2007년 시작한 인텔 익스트림 마스터스(Intel Extreme Masters, 이하 IEM)는 인텔이 시즌별로 개최하는 세계적인 e스포츠 이벤트지만, 솔직히 첫 시작에 대한 기억을 가진 이들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최근 2~3년 사이에 인텔이 프로세서와 관련된 크고 작은 행사에서 IEM의 뜨거운 분위기를 전하기 위해 시간을 내고 있다. 대형 스테이지 위에서 멋진 승부를 펼치는 프로 게이머, 그 승부에 환호하는 수천 명의 참관객, 그리고 인터넷을 통해 이를 지켜보는 수천만명의 인터넷 시청차 등 IEM의 분위기를 전하려는 데 애쓰고 있다.
이토록 인텔이 IEM의 분위기를 적극적으로 알리는 배경에는 PC 시장의 중요한 변화 때문이다. IEM 같은 e스포츠가 PC 영역에 미치는 영향, 또는 e스포츠를 앞세워 바뀌고 있는 PC 시장에 변화를 주려는 의도다.
PC 시장의 추락에 관한 보고서는 분기마다 끊임 없이 나오고 있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그 안을 좀더 들여다보면 PC의 모든 영역이 날개 없이 추락하는 것은 아니고 계속 성장하는 영역도 있다. 그 성장 영역 중 하나가 바로 고성능 게이밍 PC다. 물론 고성능 게이밍 PC는 단순히 성능 좋은 부품을 쓴 PC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장시간 게임을 안정적으로 즐길 수 있는 기술을 적용한 성능과 안정성이 최적화된 PC다. 인텔 리 메이첸 VR/AR 부문 판매 총괄 매니저도 게이밍 PC는 “CPU만 아니라 전체 플랫폼, 즉, 그래픽과 입출력 시스템의 모든 성능이 조화를 이루는 게 중요하다”고 말한다.
게이밍 PC의 성장은 비단 인텔만 말하는 게 아니다. 그래픽 칩셋이나 브랜드 PC를 내놓는 PC 제조사도 신제품을 출시할 때 빼놓지 않고 시장 조사 기관의 데이터를 인용하면서 게이밍 하드웨어를 내놓는 이유를 설명하곤 한다. 게임 플랫폼 부문에서 성장 속도는 모바일이 가장 빠르지만, 하드웨어 시장 성장률은 PC쪽도 만만치 않은 것이다. 특히 PC월드는 아직 게이밍 PC 시장의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시장 조사 기관들은 게이밍 PC 시장이 해마다 26% 성장 중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이러한 분위기는 PC를 판매하는 현장에서 곧바로 체감되는 듯하다. 고성능 PC 제품을 판매하는 퓨젯 시스템즈 CEO는 윈도 10과 스카이레이크, 가상 현실, 그리고 갖가지 게임 타이틀이 출시한 2015년의 게이밍 PC 판매가 좋았는데, “IDC 같은 시장 조사 기관이 집계하는 보급형 PC 제품과 달리 PC 게이밍 시장은 완전히 다른 세상”이라고 맥시멈 PC 인터뷰에서 밝히기도 했다. 즉, 고품질 PC 게임이 진화하면서 게이밍 PC 시장의 요구 사항이 더 높아진 셈이다.
특히 e스포츠는 게이밍 PC 시장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 중 하나다. 대부분 게임을 직접 즐기기 위해서 PC를 사지만, 게이밍 PC를 사도록 만드는 콘텐츠를 생산하는 e스포츠의 역할을 빼놓기 어렵다. 다른 스포츠에 비해 활동적으로 보이지 않아도 태어날 때부터 디지털 디스플레이에 익숙해진 오늘 날의 세대들에게 전문화되고 산업적으로 성숙해진 e스포츠는 단순히 즐기고 끝내는 게임의 차원을 벗어나 스포츠 콘텐츠로 인식하고 그 안의 모두를 스포츠 브랜드로 인지한다. 마치 바르셀로나에서 뛰는 메시의 플레이에 열광하고 그의 유니폼이나 여러 장비들까지 관심을 갖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다만 바르셀로나 메시, 레알 마드리드의 호날두가 TV를 통해서 공유되는 콘텐츠였던 반면, e스포츠는 인터넷으로 공유되고 있다. 무엇보다 TV 세대보다 인터넷이 가까운 디지털 세대들에게 맞는 중계 플랫폼의 등장으로 e스포츠의 시청자는 해마다 늘고 있다. 인텔 조지 우 e스포츠 마케팅 매니저는 “IEM 시즌 한 경기 당 트위치를 통한 평균 시청률이 2천만 뷰에 이르고 e스포츠의 연간 시청수가 올해 2억5천600만 뷰에 이를 것”이라 말한다. 인터넷으로 중계되는 e스포츠가 TV로 중계되는 스포츠에 못지 않게 점점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는 의미인데, 2020년 시청수는 4억 뷰가 넘어설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점점 더 커지고 있는 PC 게임 기반의 e스포츠는 PC 부품과 제조사들을 더 신경쓰게 만든다. 인터넷에서 중계되는 모든 것이 브랜드로 연계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게이밍 PC가 고성능이어야 한다는 점에서 성능 지향적인 브랜드를 알리기에 더 없이 좋은 부분이다. 지난 10년 동안 IEM을 치른 인텔도 이 점을 빼놓지 않는다. 조지 우 매니저는 “IEM을 통해 인텔이 얻고자 하는 것은 인텔의 가치와 스토리, 그리고 브랜드를 전달하는 것인데, 실제 IEM이 지대한 공헌을 했다”고 인정했다. 인텔 간판을 단 e스포츠가 고성능 게이밍 PC용 프로세서에 대한 이미지를 뿌리 내리게 하고 있는 것이다.
인텔은 게임용 고성능 프로세서의 이미지를 확산해 온 IEM을 여러 나라를 돌면서 진행한다. 우리나라도 시즌 11의 세 번째 대회인 ‘IEM 경기’를 12월 16일부터 18일까지 경기도 고양 실내 체육관에서 진행했다(참고로 여기서 경기는 경쟁하는 의미가 아니라 경기도를 뜻한다). 시즌 3이후 8년 만의 단독 개최다. 다만 한국에서 개최하는 만큼 일부 종목을 바꿨다. 스타크래프트2와 리그 오브 레전드는 그대로 열리는 반면 카운트 스트라이크를 오버워치로 변경한 것이다. 카운트 스트라이크가 인기를 누리지 못한 한국의 특수한 상황 때문에 빚어진 일시적 변경이지만, 오버워치의 요구 제원을 고려할 때 인텔과 잘 맞는 종목 선정이라는 평가도 있다.
오버워치와 리그 오브 레전드 각 10만 달러, 스타크래프트 3만5천 달러 등 모두 23만5천 달러(원화로 약 2억8천만 원)의 상금을 걸고 세계적인 e스포츠 선수들이 화려한 무대 위에서 멋진 승부를 펼쳤다. IEM이라는 타이틀이 반짝이는 화려한 조명 아래서, 그 모습이 인터넷으로 생생하게 중계됐다. IEM 시즌 11의 마지막은 폴란드에서 장식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