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수스가 컴퓨텍스에서 두 번의 프레스 이벤트를 개최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순서만 다를 뿐 게이밍 브랜드인 ROG와 에이수스 브랜드 제품군은 분리해 내놓는다. 컴퓨텍스 부스도 예외는 아니다. 에이수스와 ROG 부스는 성격차 만큼이나 부스 색깔도 다르다. 통로 양옆으로 새하얀 에이수스의 세상과 검붉은 ROG의 세계가 TWTC 난강에 공존하는 묘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올해는 ROG를 앞세워 분위기를 이끌었지만, 그래도 에이수스 제품들로 마무리하는 일정을 아예 제외한 것은 아니다. 사실 에이수스 브랜드 제품들은 게이밍에 집중하는 ROG 제품보다 범위가 훨씬 넓고 다양하다는 특성이 있다. 데스크톱, 노트북, 모니터 등 PC 제품군은 물론 스마트폰과 태블릿, 여기에 스마트워치와 로봇까지 아우른다. 실제로 이러한 제품은 ROG 이벤트가 아니라 에이수스 이벤트를 통해서만 볼 수 있다.
올해 이벤트의 주인공은 크게 보면 두 가지다. 스마트워치와 노트북이다. 하지만 제품을 좀더 가까이 다가가 보면 딱 두 가지 이야기만 있는 것은 아니다.
에이수스는 4년 전 스마트워치 시장에 첫 제품인 젠워치를 내놓았다. 당시 누구나 스마트워치를 내놓을 수 있는 시대에 에이수스의 참가는 이상할 게 아니다. 단지 후속 제품을 출시한 이후에도 성적이 뒷받침되지 않았을 뿐이다.
아마도 젠워치의 경험은 에이수스 스마트워치의 방향을 바꿔야 할 이유였을 지도 모른다. 결국 이름을 바꿔 발표한 비보워치 BP(VivoWatch BP)는 기존 스마트워치와 전혀 다른 성격을 갖게 된다. 시계의 스타일보다 기능에 더욱 초점을 맞춘 제품이라서다.
비보워치 BP의 핵심은 혈압을 잴 수 있다는 것이다. 보통 심박수를 측정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혈압을 측정하는 스마트워치는 드물다. 심전도 및 광전자 센서 등 화면 왼쪽의 이중 센서 위에 손가락만 대면 15초 만에 정확한 혈압을 측정한다. 이용자는 이 데이터를 가족이나 의사와 공유하고 인공 기능 기반 분석 도구인 헬스AI(HealthAI)는 이용자에게 무엇을 해야 더 좋아지는지 구체적인 방법을 알려준다. 한번 충전으로 28일 동안 대기 상태를 유지하고 피트니스 모드로 사용하면 이틀 동안 작동한다.
비보워치 BP에 이어 곧바로 초점이 노트북으로 옮겨갔다. 사실 에이수스 브랜드의 노트북은 비보북(Vivobook)과 젠북(Zenbook) 시리즈로 나뉜다. 비보북이 조금 가볍게 쓸 수 있는 제품이라면 젠북은 업무용 또는 전문가들을 겨냥한 제품에 가까운데 에이수스는 컴퓨텍스 때마다 두 제품군의 후속 모델을 공개했고 올해도 똑같은 풍경은 이어졌다.
다만 두 제품군의 후속 시리즈가 서로의 성격을 조금 달리해야 한다는 사실을 확실히 보여주려는 듯하다. 특히 비보북은 기존 에이수스 노트북과 다른 느낌을 받게끔 외형의 변화를 강조했는데, 비보북 S 시리즈들은 독특한 질감의 마감처리에 5가지 색상을 넣어 훨씬 젊고 밝아졌다. 일부 모델은 덮개를 열었을 때 뒷부분이 키보드를 들어올리는 구조를 채택했고, 8세대 코어 i7 프로세서와 엔비디아 지포스 MX150을 탑재해 성능도 충분히 보완했다.
그런데 새로운 젠북 시리즈에 비해선 상대적으로 관심을 덜 받을 수밖에 없을 듯하다. 특히 성능은 물론 기능적 측면에서 변화가 컸던 젠북 프로에 관심이 쏠리는 것은 어쩔 수 없어 보여서다. 젠북 프로 UX580은 전문가를 겨냥한 제원으로 채운 고성능 노트북이다. 8세대 인텔 코어 i9과 엔비디아 지포스 GTX 1050Ti, 초고속 PCIe x4 SSD와 4K 해상도에 가까운 디스플레이 등 처리 성능 등 넉넉한 제원으로 채웠다.
하지만 젠북 프로의 특징은 제원에 있는 것이 아니다. 제원보다 트랙 패드가 더 흥미를 끈다. 보통 터치만 되면 그만인 트랙 패드 공간에 대형 화면을 넣은 것이다. 물론 트랙 패드의 기능을 하는 동시에 터치 스크린도 되는데, 기능적으로 마치 애플 맥북 프로의 키보드 상단에 넣은 터치바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스크린 패드라고 부르는 이 트랙 패드는 풀HD 해상도를 가진 디스플레이에 메뉴를 표시하면 마치 스마트폰을 보는 듯한 느낌이다. 액셀이나 워드, 파워포인트 같은 응용 프로그램에 따라 간단한 메뉴나 조작 화면을 표시하고 때론 동영상을 재생하기도 한다. 음악 플레이어를 띄워 놓거나 계산기를 띄울 수도 있고, 달력을 보거나 일정을 스크린 패드에서 확인할 수도 있다. 숫자키만 표시할 수도 있다.
스크린 패드를 지원하는 프로그램은 마이크로소프트 오피스 외에는 아직 알려진 프로그램은 없다. 응용 프로그램에서 스크린 패드를 지원하지 않으면 전용 메뉴가 뜨지 않으므로 에이수스는 이 터치스크린을 위한 개발자 도구를 동시에 공개하고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의 협조를 요청하고 있다. 스크린 패드가 트랙 패드를 넘어서는 활용성을 보여줄 것인지 지금은 예단하긴 어렵지만, 세컨드 디스플레이로 인식시킨 뒤 확장 화면 모드로 이용하면 색다른 활용법을 찾을 수 있을 듯하다.
이벤트 주인공으로 여겨진 젠북 프로의 발표가 끝난 뒤 프레스 행사는 끝난 것이라 생각이 들 무렵 에이수스는 예상치 못한 제품을 하나 더 무대 위로 들고 왔다. ‘AI PC’를 표방한 프로젝트 프리코그(Project Precog)다.
프로젝트 프리코그는 미래의 컨셉 노트북이다. 그렇다고 단순한 상상으로 빚은 모형이 아니라 실제로 작동하는 시제품일 뿐만 아니라 2019년 출시하는 일정까지 모두 잡혀 있는 개발 중인 제품을 들고 온 것이다.
인공 지능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전 프로젝트 프리코그는 매우 독특한 유형의 제품이라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물리적인 키보드가 있어야 할 자리에 또 하나의 디스플레이가 있어서다. 메인 디스플레이와 똑같은 크기의 디스플레이를 키보드 자리에 넣은 듀얼 스크린 노트북인 것이다.
물론 프로젝트 프리코그는 색다른 노트북을 위해 단순히 두 개의 화면을 넣은 게 아니다. 노트북이 상황에 따라 모드를 다양하게 바꿀 수 있다. 노트북 모드에서는 아래 화면에 키보드를 표시할 수 있고, 나머지 공간에 더 많은 인터페이스를 노출할 수 있다. 노트북을 세우면 듀얼 스크린 모니터로 세울 수 있고, 평평하게 펴서 바닥에 놓으면 테이블 탑 PC로 쓰는 등 투인원을 넘어서는 활용도를 갖고 있다.
하지만 에이수스는 듀얼 스크린을 이용하는 모드 변환만 프로젝트 프리코그의 특징으로 내세우진 않는다. 인공 지능을 주요 특징으로 꼽는다. 이미지 인식 기계 학습 프로세서인 인텔 모비디우스 미디야드 2(Movidius Myraid 2)로 이용자의 손을 빠르게 감지해 키보드의 위치를 조정하거나 펜을 들었을 때 스타일러스 모드를 띄우는 등 상황에 따라 PC 스스로 모드를 바꾼다. 마우스를 연결하면 트랙 패드 공간을 없애 더 많은 응용 프로그램을 화면 하단에 띄우도록 만들 수 있고, 키보드까지 연결하면 가상 키보드를 없애고 듀얼 스크린을 모두 모두 활용할 수 있다.
프로젝트 프리코그는 완성형이 아니기 때문에 출시 직전 어떻게 달라질 것인지 알 수는 없다. 프로세서를 비롯한 제원은 그 때 가봐야 알 수 있는 부분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인공 지능 PC에 걸맞게 얼마나 다양한 응용 프로그램과 환경을 갖추느냐다. 키보드 없는 두 개의 디스플레이로 이뤄진 PC에 대한 새로운 방향을 실험하는 제품이기도 하지만, 인공 지능 PC라는 그 주장을 충분히 납득시킬 수 없다면 AI PC로 불릴 수 없기 때문이다. 에이수스에게 그 시간은 1년도 채 남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