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운영체제를 담든 간에 노트북을 아주 다르게 만드는 법은 거의 없다. 어차피 노트북을 구성하는 요소는 별다르지 않아서다. 하지만 운영체제에 따라서 같은 노트북이라도 이용 경험이 완전히 다르다. 운영체제가 시스템을 돌리는 데 필요한 관리 기능을 넘어 다뤄야 할 응용 프로그램의 설치 및 실행까지 아우르는 플랫폼이다 보니 주로 쓰지 않던 운영체제의 노트북을 만나면 전혀 다른 제품으로 느낄 수밖에 없다.
레노버 씽크패드 C13 요가 크롬북 Gen1도 이러한 느낌을 가진 노트북이다. 단순하게 보면 씽크패드 브랜드가 새겨진 기존 노트북과 조금도 다르진 않지만, 크롬OS를 운영체제로 쓰다 보니 윈도나 맥OS를 쓰던 느낌과 다를 수밖에 없어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씽크패드 C13 요가 크롬북 Gen1(이하 씽크패드 C13 요가 크롬북)은 값싼 교육용 시장 대신 기업 시장을 겨냥해 출시한 크롬북이기에 흥미롭다. 더욱이 크롬OS를 얹은 씽크패드 브랜드의 크롬북이라니 더 궁금했다.
크롬북의 첫인상 바꿀 견고한 만듦새
사실 크롬북을 값싼 노트북 정도의 선입견을 갖고 있는 이들에게 씽크패드 C13 요가 크롬북은 남다른 첫 인상을 줄만하다. 값을 낮추기 위해 플라스틱 재질을 쓰는 대부분의 크롬북과 확실히 다른 만듦새를 갖고 있으니 말이다. 물론 씽크패드 노트북 특유의 묵직한 어둠은 없지만, 재질이나 마감 등 전반적인 만듦새 만큼은 씽크패드 제품군에서 흔히 보던 것들이다.
씽크패드 C13 요가 크롬북은 알루미늄 재질이다. 본체 가운데 일부만 쓴 것이 아니라 노트북 상판과 하판까지 모두 알루미늄 재질을 써 단단하다. 알루미늄 재질 위에 짙은 청색을 입혔지만, 불빛 아래에선 빛이 반사되다보니 다른 씽크패드에 비해 어두운 느낌은 상대적으로 덜하다.
노트북 상판에 크롬 로고가 없이 보면 영락없는 씽크패드 노트북이라 해도 틀린 말은 아닐 듯하다. 이음새 부분을 비롯해 각 단자의 재단이나 마감도 매우 깨끗하게 처리됐다. 상판과 하판을 연결하는 경첩 부문도 별달리 벌어짐이 없고, 바닥면도 제법 깔끔하다. 다만 특이한 점이라면 음량 버튼이 오른쪽 측면에 있다는 점이다. 화면을 뒤집어 접었을 때를 고려한 설정으로 보인다. 이 밖에 각각 2개씩 있는 USB-A 및 USB-C 단자, HDMI 출력 단자, 마이크로SD 카드 슬롯 등 일반적인 노트북에서 볼 수 있는 연결 단자와 확장 슬롯을 갖췄다.
크롬북 세계에선 얕볼 수 없는 구성
앞서 이야기했듯이 대부분의 값싼 크롬북은 만듦새 뿐만 아니라 비용 효율적인 기본 제원을 갖고 있다. 아주 뛰어나지 않은 성능의 프로세서, 운영체제를 무리 없이 작동할 수 있는 수준의 램, 지장을 받지 않는 수준의 전송 속도를 가진 저장 공간 등 최소 비용으로 만들 수 있는 제품이 대부분이다.
씽크패드 C13 요가 크롬북은 이같은 기존 관습을 버린 제품이다. 윈도 계열과 경쟁할 정도는 아니어도 크롬북 시장에선 확실히 기준을 넘은 제원을 갖고 있다. 테스트 제품의 프로세서는 4코어 AMD 라이젠 5 3500C, GPU는 라데온 베가 모바일이다. 램은 8GB, 저장 공간은 128GB SSD를 담았다. 조금 부족하다 싶은 저장 공간을 빼면 프로세서와 램은 크롬OS 제품군 가운데 가장 나은 조건이다. 참고로 씽크패드 C13 요가 크롬북은 라이젠 3 시리즈 프로세서 옵션도 있다.
더불어 씽크패드 C13 요가 크롬북은 두 개의 카메라가 있다. 하나는 화면 상단에, 다른 하단은 키보드 위쪽에 달았다. 화면 위쪽 카메라는 이해하기 쉬운데, 키보드 위쪽 카메라를 처음 봤을 땐 잘못 넣은 게 아닌가 싶은 이들이 많을 듯하다. 씽크패드 C13 요가 크롬북은 화면을 360도 접을 수 있는데, 이렇게 접으면 키보드 위쪽에 있는 카메라를 후면 카메라처럼 쓸 수 있다. 화면 상단 카메라는 영상 회의를 위한 720p HD 카메라에 불과하지만, 후면 카메라는 500만 화소 카메라라 좀더 많은 픽셀을 담을 수 있다. 더불어 화면 상단 카메라는 해킹을 방지하는 물리적인 카메라 커버가 있다.
씽크패드 C13 요가 크롬북의 키보드는 씽크패드 키보드와 동일하다. 누르는 깊이나 반응성은 여느 씽크패드와 다른 점을 찾기 어렵다. 다만 테스트 제품이라 한글 자음과 모음 각인이 되어 있지 않은 상태였고, 한영 전환 버튼이 따로 없는 터라 <컨트롤+스페이스>를 눌러 입력 자판을 변경해 줘야 했다.
더불어 ‘빨콩’으로 불리는 트랙포인트도 예외 없이 적용되어 있다. 키보드에서 손을 떼지 않고 커서를 빠르게 옮기고 버튼을 누를 수 있는 장점을 크롬북에서도 그대로 살렸다. 물론 아래 넓은 트랙패드도 있으므로 다루는 환경에 맞춰 더 편한 것을 골라 쓸 수 있다.
잠금을 좀더 쉽고 빠르게 해제하는 지문 센서는 트랙패드 오른쪽에 있다. 씽크패드 C13 요가 크롬북을 잠글 땐 키보드 오른쪽 상단의 잠금 버튼을 눌러 줘야 하는데, 이후 잠금을 풀 땐 비밀번호 대신 지문으로 손쉽게 해제된다.
크롬+안드로이드 태블릿처럼 쓰다
씽크패드 C13 요가 크롬북의 화면은 터치 스크린이다. 모든 조작을 화면 손가락으로 할 수 있다는 의미다. 하지만 크롬OS와 여기서 실행하는 대부분의 웹앱은 터치스크린을 쓸 일이 별로 없다. 오히려 키보드와 트랙포인트, 트랙패드를 이용하는 것이 훨씬 편하다.
그런데 크롬OS에서 안드로이드 앱을 설치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크롬OS는 이미 안드로이드 앱을 배포하는 구글 플레이 스토어가 설치되어 있다. 구글 플레이에서 있는 앱 상당수가 손가락으로 조작하도록 만든 앱이라 터치 스크린이 있어야 편하게 다룰 수 있는데, 씽크패드 C13 요가 크롬북은 이를 위한 기본 조건을 갖춘 것이다.
더구나 씽크패드 C13 요가 크롬북은 화면을 360도 뒤집어 접는 구조다. 키보드 없이 화면만 보이도록 접고 안드로이드 앱을 실행하면 영락 없이 대형 안드로이드 태블릿처럼 보인다. 물론 키보드 없이 화면만 갖춘 태블릿 제품군과 비교하면 무겁지만, 안드로이드 앱을 이용하는 측면에선 최소한의 편의성을 갖추고 있다.
여기에 내장되어 있는 스타일러스 펜을 함께 다루면 더욱 다양한 작업을 할 수 있다. 씽크패드 C13 요가 크롬북 오른쪽 손받침 부분 쪽에 숨어 있는 스타일러스 펜은 충전식으로 이 펜을 꽂으면 자동 충전되도록 설계되어 있다. 이 펜을 꺼낼 때 표시되는 화면 캡쳐 같은 기본 메뉴를 굳이 이용하지 않아도 화면 터치나 그림, 메모 등 여러 작업에 활용할 수 있다. 특히 태블릿으로 작업할 때 화면에 지문을 남기지 않고 조작할 수 있는 점도 무시할 수는 없는 부분이다.
꼭 씽크패드 C13 요가 크롬북에서 웹앱이 아닌 안드로이드 앱을 설치하고 실행하는 이유는 네트워크를 연결하지 않는 곳에서도 작업할 수 있어서다. 문서나 이미지 편집처럼 굳이 네트워크 및 로그인을 요구하지 않는 앱을 실행하고 원하는 작업을 할 수 있다. 물론 일부 안드로이드 앱은 설치 이후 제대로 실행되지 않거나 에뮬레이션에 따른 설치 중 속도 저하를 피할 수 없다. 그래도 큰 무리 없이 실행되는 안드로이드 앱은 씽크패드 C13 요가 크롬북의 노트북 모드나 태블릿 모드의 활용도를 높이는 데 있어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어쩐지 아쉬운 멀티미디어 성능
크롬북은 상대적으로 멀티미디어 성능에서 아쉬운 점이 많다. 씽크패드 C13 요가 크롬북은 기존 크롬북의 한계를 좀더 밀어낸 제품이지만, 아쉬움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씽크패드 C13 요가 크롬북에서 가장 아쉬운 부분은 내장 스피커의 품질이다. 멀티미디어를 위해 최적화된 제품은 아니지만, 노트북 모드에서 화면과 멀리 떨어져 배치된 스피커의 음량과 음질은 여러모로 아쉽다. 특히 저음부가 상대적으로 약하고 고음이 강해 재생 중인 콘텐츠의 느낌을 충분히 전달하지 못한다.
그나마 화면을 접어 태블릿 모드로 바꾸면 화면과 스피커의 위치가 가까워지면서 화면에서 소리가 멀게 들리거나 음량 부족 현상은 줄어든다. 또한 볼륨 조정 버튼의 방향도 태블릿 모드에 맞게 적용되어 있어 다루기 수월해진다. 하지만 태블릿 모드라도 고음이 상대적으로 강해 울림이 강한 음악을 스피커로 들을 땐 거부감이 든다.
유튜브나 넷플릭스, 티빙, 웨이브 등 스트리밍 영상이나 이용자가 가진 영상 파일은 대부분 무난하게 볼 수 있다. 유튜브는 웹 앱으로도 볼 수 있지만, 안드로이드 앱을 설치하고 볼 수 있고, 4K 스트리밍도 무난하다. 티빙이나 웨이브도 안드로이드 앱으로 볼 수 있지만, 넷플릭스는 안드로이드 앱을 이용하면 앱의 정책상 저화질로만 볼 수밖에 없어 안타깝다. 코디(Kodi) 같은 안드로이드 미디어 플레이어로 이용자가 갖고 있는 동영상을 스트리밍으로 감상할 수 있으나 앱과 코덱 특성에 따라 4K 영상은 시청하기 어려웠다.
크롬북의 하이클래스를 지향하다
아마도 일반적인 크롬북 시장을 겨냥했다면 씽크패드 C13 요가 크롬북은 확실히 보기 어려운 제품이었을 것이라는 느낌이 든다. 제원이나 만듦새, 활용을 위한 구성까지 일반적인 요구 수준을 벗어나 레노버가 씽크패드 브랜드 제품으로 보여줄 수 있는 필요 이상의 것들을 꽉 채워 넣으려 한 욕심이 눈에 보여서다. 적어도 이 제품은 크롬북의 하이클래스를 지향하는 제품이라고 해도 어색하진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시 아쉬움은 있다. 클라우드에 데이터를 저장한다고 해도 안드로이드 앱의 활용까지 감안하면 저장 공간이 다소 부족하고, 이것저것 채워 넣은 만큼 결코 싼 제품은 아니기에 엇비슷한 가격의 노트북과 상대성을 겨뤄야 한다. 또한 씽크패드 C13 요가 크롬북의 배터리 시간도 보기에 따라선 충분치 않을 수 있다. 일반적인 작업에선 큰 문제가 없으나, 스트리밍 영상을 1시간 재생하는데 14% 정도의 배터리를 소모하는 만큼 작업 환경에 따라 배터리가 충분치 않을 수 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어댑터가 매우 작아서 휴대하기 쉽고, 밤새 전원을 끄지 않고 덮개를 덮어 대기 모드로 돌려도 배터리를 겨우 2~3%만 소모한다는 점이다.
몇몇 단점은 어쩔 수 없지만, 고급형 크롬북을 찾는 기업이나 개인들에게 레노버 씽크패드 C13 요가 크롬북 Gen 1은 선택지 안에 포함될 요건을 갖췄다. 물론 어떤 기준으로 선택할 것이냐에 따라 선택은 달라질 것이다. 그래도 크롬OS를 얹어도 씽크패드의 수준이 바뀌지 않는다는 점을 레노버 씽크패드 C13 요가 크롬북 Gen 1에서 확인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닐 듯 싶다.
덧붙임 #
해당 제품 리뷰를 위해 한국 레노버로부터 씽크패드 C13 요가 크롬북 Gen 1을 2주 동안 대여했으며, 어떤 대가도 받지 않았음을 밝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