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 줄여서 ‘단통법’이라 부른다. 단통법은 이용자 차별을 해소하고 이통 서비스의 경쟁력을 뿌리 내리겠다는 목적으로 출발했고, 가계 이동통신비 인하를 통한 소비자 이익 추구라는 이유를 전면에 내세우며 그 당위성을 인정받으려 했다. 하지만 이 법이 행복을 안겨준 곳은 거의 없다. 이통사를 빼고는 말이다. 이용자도, 대리점도 싫어하는 이 법을 밀어붙인 미래부는 보조금과 약정 할인이라는 두 정책 만으로 구멍난 법을 땜빵하는 데 여념없다. 이제는 세금을 끌어와 그 당위성을 홍보하고 있으나 이용자가 이동통신비 인하를 체감할 만한 실질적 증거 하나 제대로 못대는 상황에서 이 법에 대한 저항은 한참 지났는 데도 아직도 줄어들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제조사들도 단통법의 보조금 상한선을 풀어달란 요구를 하고 있다. 먼저 쓰러진 팬택이 그랬고, 최근 LG도 힘주어 말하기 시작했다. 보조금 상한선 탓에 신제품이 팔리지 않는 현 상황을 돌파하기 위해서 단통법 시작 때 보였던 적극적 찬성 입장에서 한발 물러선 셈이다. 물론 LG가 단통법에 반대하는 의미로 해석하긴 어렵지만, 보조금을 제한한 단통법 상황에서 신제품 효과를 누리지 못하는 어려움을 풀어달라는 의미는 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LG 뿐만 아니라 국내 제조사들은 국내 소비자들에게 중요한 한가지를 단통법이 일깨웠다는 것을 아직 깨우치지 못한 모양이다. 단통법 시행 이후 ‘스마트폰은 비싸다’는 인식을 확실하게 심어 놓은 상황에서 소비자는 더욱 신중해졌고, 정말 돈 주고 살만한 제품이 아니면 지갑을 열지 않은 것이다. 그렇다고 모두 지갑을 닫은 것은 아니다. 살만한 제품이면 보조금을 제한해도 소비자는 산다. 비록 우리 모두를 ‘호갱’이라 할지라도 결국 이용자가 원하는 제품은 팔린다는 게 단통법의 역설이다.
이번 단통법의 최대 수혜자는 애플이라고 입을 모은다. 그렇다. 아이폰은 잘 팔렸고, 애플은 단통법 효과를 봤다. 그 어렵다는 단통법 아래에서도 애플은 아이폰6의 신제품 효과를 제대로 누렸으니 말이다. 미래부가 최근 공개한 제조사별 점유율을 보면 지난 해 3분기 5% 안팎이던 점유율은 아이폰6를 출시한 4분기 27%를 훌쩍 넘겼다. 갤럭시 S6가 나오기 전인 올해 3월까지 아이폰은 25% 가까운 점유율을 유지했다. 이렇게 높은 점유율에 보조금을 제한한 단통법까지 영향을 받다보니 애플은 아이폰6를 출시한 뒤 그 짧은 기간 동안 우리나라에서 엄청난 수익을 올렸을 거라고 보고 있다. 이에 비하면 국내 업체들은 신제품 효과를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있다. 삼성은 갤럭시 S6 이후 60%가 넘던 예년의 점유율을 회복했지만, 30%를 넘겼던 LG의 점유율은 단통법 시행 이후 15%로 줄었다가 G4를 출시한 뒤에 20% 이상으로 조금 올랐을 뿐이다.
그런데 애플이 더 많은 수익을 가져갈 수 있도록 단통법이 도와줬다는 지적을 떠나, 단통법이라는 똑같은 조건에서 아이폰만 왜 잘 팔렸고 애플의 점유율을 올렸는지 그 점이 더 중요하다. 아이폰이라고 값이 더 쌌을까? 천만의 말씀이다. 단통법 상황에서 아이폰도 비쌌다. 하지만 아이폰은 팔렸다. 그 비싼 아이폰을 제돈내고 샀다는 사람이 많았다는 이야기다. 이익이야 어찌됐든 경쟁할 만한 신제품이 없는 상황에서 소비자들은 아이폰을 선택한 것이다. 제품의 성능, 애플이라는 브랜드, 새로운 기능 등 그것을 선택한 이유는 모두 다를 테지만, 단통법도 소비자의 선택을 막진 못한 것이다.
‘단통법이 시행되면 모두 동일한 환경에서 해볼만할 것’이라고 말하던 국내 제조사가 이제는 단통법의 보조금 상한을 풀자고 목소리를 높이는 건 그래서 공감하기 어렵다. 아이폰을 사라고 단통법이 도왔을까? 법이 우리나라 소비자를 모두 같은 조건의 ‘호갱’으로 만들었지만, 그 ‘호갱’의 선택은 국산 스마트폰이 아니었던 것이다. 오히려 신중한 구매를 생각하게 된 덕분에 주위에서 써볼만하다고 권하는 아무 제품이나 사던 ‘호갱’ 딱지를 뗀 것이 더 아이러니다. 제조사가 무슨 배짱으로 해볼만하다고 했는지 몰라도 소비자가 선택하지 않았다는 결과를 법 탓으로 핑계댈 수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나는 여전히 지금의 단통법은 폐지되어야 한다는 입장에 변함이 없다. 하지만 단통법이 소비자를 어떻게 일깨웠는지에 대해선 더 많은 분석이 필요하다고 본다. 그냥 요금제와 묶어 값싸게 샀던 스마트폰이 아니라 정말 제 돈 내고 사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명확히 갈라놓은 현상에 대한 우리의 분석은 너무 부족하다. 제조사가 문제라고 지적한 단통법의 보조금 상한선이 특정 제품에는 왜 문제되지 않았는지를 보라. 그것이 단순히 제품을 잘 만들고 못 만든 차이 때문일까? 아직도 그런 안일한 판단 속에서 이미지 경쟁력을 끌어올릴 생각 없이 높은 출고가만 유지하겠다는 얄팍한 노림수를 계속 보인다면 소비자들이 국산 스마트폰을 외면하는 속도는 더 빨라질 것이다.
원문 출처 | 블로그 chitso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