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은 한 달’이라는 표현도 알맞지 않은 이 시기에 마주하는 결산 보고서와 같은 기자 간담회를 한국 MS가 3일 오전 여의도 콘래드 호텔에서 열었다. 이날 발표가 흥미로웠던 점이라면 숫자에 인색했던 한국 MS가 가장 다양한 숫자를 공개했다는 점이다. 윈도 10이 7월 29일 공식 출시된 이후 지난 4개월 동안 윈도 10의 보급과 장치 시장의 변화를 설명하기 위함이지만, 자체 조사와 외부 기관의 통계 등 여러 조사 결과를 인용한 것은 조금 이례적인 일로 받아들일 만하다. 그만큼 윈도 10과 장치 시장에서 지난 4개월의 성과에 대해 말하고 싶을 만큼 이야기가 많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한국 MS 디바이스 부문 송규철 상무는 “윈도 10은 역사상 가장 빨리 보급되는 윈도다”라고 말한다. 지금까지 드러난 수치만 따지면 이 말은 맞다. 최단 기간 1억1천만 개의 라이선스가 활성화 되었고, 200개 나라에 보급되고 있으며, 9만 개의 장치가 하드웨어 호환성 시험을 통과했으니 말이다. 물론 이 숫자들은 우리나라가 아니라 전 세계를 통틀어 나온 것이다. 무료 업그레이드 전략에 PC 뿐만 아니라 모바일, 사물 인터넷 등 장치의 특성을 가리지 않는 윈도 10의 뛰어난 적응력이 주효했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분석이다.
여느 때 같으면 여기서 설명이 끝났을 텐데, 송규철 상무는 국내의 윈도 10 보급 현황도 덧붙였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활성화된 라이선스는 업그레이드를 포함해 공식적으로 알려진 것은 140만 개 수준. 새롭지 않은 소식에 실망할지 몰라 이날 200만 개로 늘어났을 것이라는 전망을 추가했다. 또한 윈도 10 하드웨어 호환 시험을 통과한 9만 개 장치 가운데 2만 개가 한국에서 통과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히기도 했다.
2만 개나 되는 장치가 우리나라에서 호환성 시험을 거쳤다는 것은 확실히 놀라운 부분이다. 주위를 둘러봐도 윈도 10 장치가 그렇게 많이 보이는 상황은 아니라서다. 물론 곧이곧대로 이 숫자를 제품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어디까지나 윈도 10에서 정상 작동하는가를 묻는 것이라 조립형 PC에 들어가는 작은 부품도 호환성 대상이니 말이다.
그렇더라도 200만 개에 이르는 윈도 10의 라이선스 증가는 돌아볼 부분이 있다. 무료 업그레이드를 감안하고 값싼 윈도 10 장치의 등장을 고려했을 때 이 숫자는 기대치보다 높다고 보긴 어렵다. 그나마 1억1천만에 이르는 전체 업그레이드 대비 2% 안팎을 차지하는 것은 아마도 MS 안에서 설득력을 가질 수 있는 부분이지만, 한국에 윈도 PC가 깔린 비율을 감안하면 한국 MS가 공개하지 않는 목표를 채웠다고 보긴 힘들어 보인다.
한국 MS가 택한 방향은 종전 PC 이용자의 업그레이드를 유도하는 것이 아니라 윈도 10 장치의 보급을 더 늘리는 쪽인 듯하다. 지난 기자 간담회에서 한국 MS가 윈도 10 장치 생태계 강화에 집중한 성과를 이야기한 것도 그 때문이다. 윈도 10을 출시할 때 25개였던 파트너 업체가 현 시점에 33개로 늘었고 이들이 내놓는 윈도 10 제품은 80여 가지로 늘어났다. 노트북이나 데스크톱PC 뿐만 아니라 태블릿과 올인원, 스틱 PC 등이 나오는 생태계의 다양성을 강조할 만하다. 인텔을 비롯한 국내외 제조사에 대한 고마움을 표하는 것도 잊지 않았고, 이날 기자 간담회 장에 파트너들의 제품을 정성 들여 전시해 놓았다.
하지만 한국 MS가 좀더 주력하고 있는 부문은 따로 있는 듯하다. 한국 MS 컨슈머 사업부 장홍국 상무는 “PC 시장 점유율을 바탕으로 모바일 시장으로 들어가기 위해 태블릿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사실 이 말은 예전에도 했다. PC와 모바일의 중간 지대에서 모바일 시장을 공략하기 위한 발판을 태블릿 시장에서 만들겠다는 것이다.
태블릿 생태계 강화를 위해 전초 기지로 삼은 곳이 중국 선전이다. 지난 몇 달 동안 MS와 인텔은 선전 프로젝트를 가동해 왔다. 50여개 디자인 하우스와 제조 업체가 윈도 디자인 클러스터에 입주했고, 이들이 만든 제품은 전세계 400여개 회사에 OEM 제품으로 공급되는 중이다. 중소 기업들에게 다소 어려운 설계와 생산 부문을 이들에게 맡겨 생태계의 취약점을 메우려는 시도였는데, 이미 우리나라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장홍국 상무는 “심천 프로젝트의 영향으로 양질의 태블릿이 늘어났고 국내 윈도 태블릿 판매량이 월 2만 대 수준까지 올라왔다”고 말한다. 올 하반기 윈도 10 라이선스를 활성화한 통계를 보니 17~19%가 태블릿이라고 밝힌 그는 2016년에 시장 조사 기관이 예측한 10%보다 더 높은 점유율을 낼 것이라고 자신한다.
여기서 장홍국 상무는 실제 시장의 인식이 다를 수 있음을 인정한다. 이 말은 2만 대나 팔리고 있는 윈도 태블릿이 실제로 잘 보이지 않을 수 있다는 의미다. 실제로 심천 프로젝트를 통해서 나온 태블릿은 저가 제품군으로 시장으로 주도할 수 있는 제품들은 아니다. 특히 모바일 시장을 주도할 만한 제품보다 태블릿을 필요로 하는 사업 영역에 공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모바일 시장을 주도하기 위한 답은 결국 태블릿이 아니라 폰이라는 사실을 한국 MS도 모르진 않는다. 태블릿 이후 더 작은 폼팩터로 가야 한다고 말한 장홍국 상무의 말처럼 이미 윈도 폰이라는 결론은 알고 있다. 단지 스마트폰을 데스크톱처럼 쓰는 윈도 폰의 컨티뉴엄에 대한 기대를 예로 들었을 때 그것이 일반 소비자보다 B2B 시장의 기대라는 점에서 다른 윈도 10 장치와 다르게 접근하는 듯한 인상이다. 물론 이런 기대를 2016년에 실현할 수 있을지 아직 모른다. 한국 MS는 원하지만, 윈도 폰에 기회가 될만한 시장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 아직은 의문으로 남아 있다. 그래도 태블릿 중심의 모바일이란 현실적 목표를 채워가는 한국 MS에게 스마트폰의 모바일이란 잠재적인 목표가 설정되었음을 윈도 10을 결산하는 공식적인 자리에서 처음 밝힌 것만으로 내년도 한국 MS의 움직임을 좀더 지켜보게 만들 이유가 될 것이다. 물론 더 이상 윈도 10이 아닌 다른 장치가 나오지 않는 기반이 마련된 뒤의 이야기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