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모리 기업으로 출발했던 인텔이 적자로 돌아선 메모리 사업 대신 프로세서 기업으로 전환했던 것은 얼마 전 타계한 앤디 그로브가 인텔 CEO로 취임했던 80년대 중후반 시절의 결정이었다. 그 선택이 오늘 날까지 인텔을 마이크로프로세서 부문의 최고 기업으로 만들어 냈지만, 그 이후의 인텔도 매우 전략적인 사고로 프로세서 시장을 지배해왔다. 단순히 PC 시장의 성장에 힘입은 것만이 아니라 PC 시장을 변화를 예측하고 주도하기 위한 분석과 판단에서 올바른 결정이 성장의 밑거름이 됐다.
하지만 PC용 프로세서 시장을 지배한 인텔은 모바일 영역으로 그 영향력을 확대하지 못했다. PC의 지배력을 모바일로 옮기기 위해서 무어스필드 기반의 모바일 인터넷 디바이스(MID) 같은 폼팩터를 업계에 제한하기도 했지만, PC와 완전히 다른 성격의 모바일 시장에 대한 낮은 이해도와 인텔의 제품 로드맵보다 더 빠르게 움직였던 모바일 시장의 예측 실패로 인텔은 모바일 시장의 주도권을 잃고 만다.
그렇다고 인텔이 일찌감치 스마트폰 시장에서 손을 뗀 것은 아니다. 인텔은 자체적으로 개발하고 있던 무선 랜과 와이맥스 이동통신 기술에 2010년 인피니온으로부터 3G 무선 사업부를 인수 합병한 뒤 통신 시장에 필요한 3G 모뎀과 LTE 모뎀을 차례로 개발해 시장에 공급하고 있다. 인텔의 3G와 LTE 모뎀 칩은 삼성, 애플, LG 등 스마트폰 제조사에서 채택하며 영역을 확장해 나갔다.
이후 인텔은 이미 진입 시기를 놓친 스마트폰 시장의 회복을 위해 안간힘을 썼다. 프로세서와 통신 모뎀을 한 칩에 통합한 아톰 SoC(시스템온칩)를 내놓기 위한 코드명 소피아(SoFIA, Smart or Feature phone with Intel Architecture)를 공개했고, 2015년부터 저가 스마트폰 시장 공략에 시동을 걸었다. 물론 그 이전에도 아톰 프로세서와 모뎀 칩을 각각 따로 넣은 스마트폰을 선보이긴 했으나 통합칩을 내놓는 것은 성능의 문제를 떠나 제조 단가를 낮춰야 하는 단말 제조사들에게 매우 중요한 요소 중 하나였다. 실제로 인텔 쿼드코어 아톰 SoC를 탑재한 에이수스 젠폰2가 200달러 안팎에 나온 것은 고성능 중저가 시장에 적지 않은 바람을 일으키기도 했다.
그러나 인텔이 코드명 소피아의 아톰 AP를 내놓긴 했어도 퀄컴의 강력한 지원을 받거나 자사 칩이 있는 삼성, LG, 화웨이 등 주요 스마트폰 제조사의 외면과 아울러 에이수스, 에이서에 공급할 AP의 생산에 차질을 빚자 인텔에 우호적이었던 이들도 인텔 AP 대신 ARM 기반 스마트폰의 공급 정책을 조정했다는 소식이 나왔다. 비록 구글이 ARM과 x86을 가리지 않는 안드로이드 운영체제를 내놓으면서 호환성 문제는 해결해줬지만, 여전히 모바일 시장에 대응하는 인텔의 행동에는 문제가 있었다.
결국 인텔은 지난 4월 20일 전체 인력의 11%를 감원하겠다는 발표와 함께 사업 방향을 수익성이 높은 클라우드와 메모리, 모바일 네트워크, 사물 인터넷 등 5개 사업부로 재편하는 구조조정안을 발표하면서 스마트폰 AP 사업도 결단을 내렸다. 로드맵에 있는 스마트폰용 AP의 개발을 취소한 것이다. 브록스톤(Broxton) 플랫폼으로 알려진 태블릿용 통합 SoC와 소피아 3GX, 소피아 LTE, 소피아 LTE2 등 예정되어 있던 소피아 플랫폼에 대해 지난 주말 인텔 대변인은 로드맵 상 해당 코드명의 제품 개발이 취소했음을 공식 확인해주었다.
물론 이번 발표는 이동 통신 모듈이 통합된 아톰 SoC의 개발을 포기하는 것으로 3G, LTE, 5G 모뎀이나 저가 노트북용 아톰 프로세서는 계속 개발한다. PC용 프로세서 역시 개발을 이어간다. 일단 점유율이 높지 않던 스마트폰 AP 시장에서 인텔 스스로 경쟁자로 남기를 포기한 것이지만 이후의 행보가 더 중요해졌다. 모바일 사업 정리가 통합 칩 사업에서 끝날지, 그와 관련된 사업부까지 정리할 지 좀더 지켜봐야 할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