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에 연결할 만한 스피커 없을까?”
가끔이라도 이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참 곤혹스럽다. TV와 함께 쓸만한 스피커가 없을 리가 있겠나? 그런 스피커야 당연히 많다. 단지 그 함축된 질문을 던진 이가 바라는 맥락을 해석했을 때 언뜻 떠오르는 제품이 없다는 게 문제다. 그런데 요즘 이런 질문을 적지 않게 받는다. 고화질을 볼 수 있는 대형 TV가 나오고 있지만, 더 얇아지면서 화질에 비해 소리의 만족도가 떨어지는 탓일 게다. 그렇다고 TV 제조사들이 세트로 파는 스피커를 쓰려니 부담스럽기도 하다. 그렇다고 5.1채널 홈시어터를 갖추는 것도 여간 부담스러운 게 아니다. 입체감이야 뛰어나지만, 그것을 둘 공간도 없고, 관리도 귀찮기 때문이다. 아마도 사운드바가 뜨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일 게다.
그런데 이런 흐름이 TV 시장만 일어나는 것은 아닌 모양이다. 요즘 PC용 사운드바가 늘어나는 것도 TV와 비슷한 이유일 것이다. 특히 더 좁은 공간에서 풍부한 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하기에 PC용 사운드바는 TV용을 고르는 것보다 더 까다롭다. 때문에 PC에 연결할 만한 스피커가 없냐는 질문을 받으면 더 말문이 막힐 수밖에 없었다. 엔비레즈의 사운드 피델리티(Sound Fidelity) 590i을 보기 전까지는 말이다.
사운드 피델리티 590i. 포장을 풀자마자 다른 제품보다 더 눈에 띈 이유가 있다. 제품 디자인에서 묘하게 애플의 향기가 난다. 늘 볼 수 있는 투박한 스피커와 다르고, 다른 사운드바와 견줘도 느낌이 다르다. 알루미늄을 섬세하게 깎아낸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사운드 피델리티 590i는 알루미늄 깎는 장인, 애플을 떠오르게 한다. 물론 제품 패키지에 아이맥과 함께 놓인 사진을 써 아이맥과 조화로움을 강조한다. 그런데 굳이 패키지 사진 때문이라고 둘러대지 않아도 제품 자체에서 풍기는 애플의 향기는 쉬이 가시지 않는다. 이음새도 없고 터치 버튼 이외의 버튼마저 없는 간소함에서, 여기에 상판 전체를 물리적으로 뚫지 않은 타공 등 고집스럽게 만들어 놓은 것을 보면 애플의 이미지가 떠오르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애플의 향기는 비단 만듦새에서만 나는 것은 아니다. 구성품조차 단출하다는 점도 그렇다. 간단한 설명서와 제품 본체 그리고 전원 어댑터가 전부다. 도대체 무슨 스피커가 연결선 하나 안준단 말인가? 이유는 있다. 기본적으로 사운드 피델리티 590i는 블루투스 스피커다. 때문에 별도의 케이블이 필요하지 않다. 블루투스가 내장된 PC와 함께 쓰라는 이야기다. 아이맥도 그 중 하나였고 스마트폰, 태블릿, 노트북도 그 대상이다. 하지만 블루투스를 내장하지 않은 일반 조립형 PC와 함께 쓸 때는 연결이 어려울 수 있다. 결국, 케이블이 필요한 상황을 생각하면 유선 케이블 하나 없는 것을 이 제품의 크나큰 단점으로 지적할 수 있다. 마치 불필요할 것 같아서 기능을 빼버리고 비판을 받는 애플과 잘 닮았다.
전원 케이블을 연결하고 제품을 물끄러미 보면 오른쪽에 터치패널 조작부가 눈에 띈다. 둥그런 조작부만으로 사운드 피델리티 590i의 모든 기능을 조작할 수 있다. 12시 부분을 누르면 전원, 6시 부분을 누르면 블루투스, RCA, Line In 등 모드가 바뀐다. 조작부 아래쪽에 LED가 숨어있다. 현재 작동 모드는 LED 색으로 확인할 수 있다. 음량을 조절하려면 테두리를 부드럽게 쓸어주면 된다. 테두리를 따라 쓸어주는 느낌은 좋은 편이나 음량을 정확하게 조절하는 것은 조금 어렵다. 소리를 통해 음량을 가늠하는 것 외엔 정확한 정도를 알 수 없다.
블루투스 스피커지만, 그래도 케이블 연결을 막지 않는 관용을 베푼다. 뒤쪽으로 돌려 보면 케이블을 연결하는 단자가 있다. 라인 인/아웃과 RCA 인을 단자다. 사운드 피델리티 590i는 PC용 제품이라 단자가 그리 풍부한 편은 아니다. TV용 제품은 따로 출시할 예정이기는 한데, 사실 급한 대로 TV와 연결할 수 있긴 하다. 그 때문인지는 몰라도 실제로 이 제품을 PC 이용자보다 TV 이용자가 더 많이 산다고 솔직하게 털어 놓는다. 그럼 그렇지… 역시 이용자들도 보는 눈은 다르지 않은 것일 게다.
바닥에 고무로 패킹한 두 개의 지지대 덕분에 제품이 밀리는 것을 막아준다. 스티커를 벗겨 적당한 곳에 고정해주면 된다. 두 지지대로 단단히 고정하면 제품이 밀리거나 음향 때문에 떨리는 것을 막아준다.
사운드 피델리티 590i의 크기는 590.6×63.1×103.3mm. 사실 이렇게 정확히 숫자로 표시대로 잘 알긴 어렵다. 그냥 가로 길이가 아이맥 27인치와 거의 맞아 떨어지는 정도다. 이 스피커의 알맞은 위치는 모니터 바로 앞. 그래서 이용자 청취 각도를 고려해 사운드 피델리티 590i는 30도 정도 앞으로 기울여서 만든 것이다.
블루투스 스피커라 페어링만 하면 곧바로 작동한다. 심지어 핸즈프리로도 작동한다. 굳이 그렇게 쓸 일이 있을까 싶지만, 그건 모르는 것이니까… 어쨌거나 애플을 닮았다 해도 스피커의 핵심은 역시 음질이다. 사운드 피델리티 590i는 apt-X와 AAC 등 두 개의 블루투스 코덱을 모두 지원한다. 아이맥, 아이폰, 아이패드 같은 애플 제품은 apt-X가 아닌 AAC 코덱만 지원하고, 안드로이드 같은 다른 블루투스 플레이어는 apt-X까지 쓸 수 있도록 만든 터라 두 코덱을 모두 담은 것이다.
사운드 피델리티 590i의 출력은 12W다. 일반 PC에 연결하는 2채널 스피커가 보통 각각 3W 안팎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강한 출력을 갖췄다. 음량이 제법 커서 아파트에선 함부로 최대 음량으로 키우기 어려울 정도다. 여기에 듀얼 패시브 라디에이터(Dual Passive Radiator)를 갖춰 보강한 저음도 인상적이다. 패시브 라디에이터는 보조 저역 발생 장치로 중저음을 표현할 수 있도록 돕는다. 따라서 이 패시브 라디에이터를 두 개 갖췄다는 것으로 일반 PC용 스피커보다 묵직한 중저음을 들을 수 있다는 소리다. 다만, 너무 큰 기대하지는 말자. 일반 PC용 스피커보다 낫다는 이야기이다. 서브 우퍼를 갖춘 스피커보다는 아무래도 저음의 깊이는 얕을 수밖에 없다. 그래도 이처럼 얇은 스피커에서 저음 포기하지 않았다는 점은 칭찬할 만하다.
사운드 피델리티 590i를 쓰면 쓸수록 정성이 들어간 제품이라는 게 느껴진다. 제품의 만듦새부터 음질까지 여러모로 공을 들였다. 10만원대 초반에 형성된 가격이 믿기지 않을 정도다. 테스트를 위해 모니터 앞을 사운드 피델리티 590i를 중심으로 정리했는데, 이제 이 스피커를 치우는 게 싫다. 단순한 PC용 스피커일지 몰라 꺼림칙했으나 일주일 동안 책상 위에서 시각과 청각 모두의 경험이 만족스러운 것은 오랜 만인 듯하다. 기꺼이 모니터 앞을 내줄 만한 제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