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사족 하나. 아직 시차에 완벽하게 적응하지 않은 몸뚱이를 떠받치고 있는 다리를 재촉해 제품 발표회가 열리는 피라 몬주익의 이탈리아 파빌리온에 행사 시작 30분 전 도착했다. 하지만 나는 곧 나를 이곳까지 데려 다 놓은 다리의 노력이 무색해진 상황이라는 것을 알았다. 예상하지 못한 것인지, 예상했으나 통제가 안된 것인지는 정확한 이유는 지금도 모른다. 다만 내 눈 앞에 펼쳐진 현실은 화웨이가 초대한 참석자를 위해 준비했던 1천500석 중 한 자리에 앉는 데 실패했다는 것이다. 그 뒤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그저 입구를 향해 조금씩 앞쪽으로 움직이면서 모든 발표가 끝날 때까지 거의 2시간을 행사장 밖에서 바르셀로나의 따가운 햇살을 받으며 몸 속 부족한 비타민 D를 생성하는 광합성 시간을 보내는 것 외에는 말이다. 물론 모든 행사가 끝나고 내부 정리를 끝낸 뒤 이날 발표한 제품을 볼 수 있는 공간까지 들어가기는 했다. 그렇다고 그 혼란을 부른 화웨이의 부족한 준비성을 지적하지 말아야 할 이유는 되지 않는다. 행사장에 들어가지 못하고 내 앞뒤에 서있던 2백여명의 참석자에게 화웨이라는 글로벌 기업의 수준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드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음은 분명하니까. 자, 사족은 여기까지만 하자.
화웨이는 MWC의 가장 큰 규모를 가진 후원자지만, 의외의 사실은 MWC 기간 동안 스마트폰을 발표하는 일이 드물다는 점이다. 물론 미디어 데이마다 다른 종류의 신제품을 공개하는 사전 행사를 열기는 했다. 지난 해는 윈도 기반 태블릿을, 2년 전은 첫 안드로이드웨어 스마트워치를 공개했으니까. 하지만 화웨이는 예상과 달리 MWC에서 신형 스마트폰을 공개하는 것을 꺼려온 업체다. 어쩌면 주인공이 될 수 있는 기회가 아니라면 포기하는 전략을 택했는지도 모른다.
그랬던 화웨이가 새로운 플래그십을 MWC17에서 발표했다. 화웨이 P10/P10 플러스는 지난 해 초 겨울, 우리나라에 출시했던 화웨이 P9/P9 플러스의 후속 제품이라는 것은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될 듯하다. 비록 우리나라 출시는 늦었어도 원래 화웨이 P 시리즈는 상반기 플래그십 전략을 책임지는 라인업이었다. 다만 화웨이는 지난 해보다 발표 시기를 MWC로 앞당긴 것이다. 여기에 구글 안드로이드웨어 2.0의 출시에 발맞춰 화웨이 워치 2 시리즈도 내놨다. 26일 오후 2시(바르셀로나 현지 시각) 피라 몬주익의 이탈리아 파빌리온이 이 모든 것을 소개하는 시각과 장소였다. 사족에 밝힌 이유로 주요 발표는 현장 안이 아닌 바깥에서 생중계 앱 ‘페리스코프’를 통해 간간히 확인했지만, 역시 실물을 보기 전까지 이야깃거리를 생각할 필요는 없었다.
일단 화웨이 P10과 P10 플러스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두 제품 모두 같은 라인업에 속해 있다고 생각했지만, 꼭 그런 것은 아니다. 기능과 기본 성능을 제외하고 화면 크기나 저장 공간, 램 같은 제원이 다른 제품이라서다. 특히 두 제품을 번갈아 둘러 보다가 카메라에서 놀라운 차이를 발견할 수 있었다는 점은 의외다. 사실 P10이나 P10 플러스는 P9때와 마찬가지로 2천만 화소 흑백 센서와 1천600만 화소 컬러 센서를 넣은 점에서 변함 없다.
하지만 카메라의 라이카 렌즈 브랜드를 유심히 들여다보면 그 차이가 보인다. 라이카 렌즈 브랜드가 달라서다. 화웨이 P10은 P9과 같은 라이카 주마릿-H(Summarit-H) 계열을, P10 플러스는 주미룩스(Summalux) 계열을 실었다. 두 스마트폰 모두 화웨이 P9 시리즈에 적용된 카메라 시스템의 바통을 고스란히 물려 받기는 했어도 라이카 렌즈 특성에 따라 조금 다른 결과물을 만날 수도 있는 부분이다. P10의 주마릿 렌즈 조리개 값은 f2.2, P10 플러스의 주마릭스 렌즈는 f/1.8이다. 다만 화웨이 P10 시리즈의 카메라로 사진을 찍어본 것은 아닌 만큼 P9보다 얼마나 더 나아졌는지를 당장 말하긴 힘들다.
P10 시리즈에서 의미 있는 또 하나의 변화는 지문 센서를 앞쪽으로 옮겼다는 점이다. 사실 화웨이 스마트폰 가운데 지문 센서를 앞으로 옮긴 것은 지난 해 공개한 메이트 9 포르쉐 에디션이 먼저였지만, 두 개의 P10 시리즈는 지문 센서를 모두 앞으로 옮겼다. 아마도 P9의 후면 지문 센서에 익숙해 있던 이용자에게 이로 인한 사용성의 변화를 지지하지 않을 수 있는 반면, 아이폰처럼 후면보다 전면 지문 센서를 바랐던 이들에게는 반가운 결정이다.
전면 지문 센서는 비록 하나 뿐이지만, 안드로이드의 소프트 버튼을 대체한다. 이를 테면 홈 화면을 한번 누르면 이전 화면으로, 꾸욱 누르면 홈 화면으로 돌아간다. 지문 센서를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살짝 밀면 최근 앱 선택 화면으로 넘어간다. 굳이 소프트 버튼을 띄울 필요 없이 지문 센서 안에서 모든 것을 다룰 수 있다.
그런데 전면 지문센서를 넣은 화웨이 P10을 보면 실제로 아이폰과 닮은 느낌이 드는 것도 부인하기 어렵다. 더구나 그냥 살짝 대는 터치는 물론 꾸욱 누르면 진동이 일어난다. 비록 오목하게 들어간 타원형 지문 센서의 형태가 다르긴 해도 여러 모로 비슷한 인상을 완전히 지우진 못한다. 그나마 뒷면 색상을 다채롭게 꾸미지 않았다면 자칫 아이폰 클론으로 오해를 받을 수도 있었을 게다. 개인적으로 P10은 청색, P10 플러스는 검정 모델이 마음에 들기는 했다.
화웨이 P10과 P10 플러스의 차이는 이전 세대와 비슷하게 나뉜다. P10은 FHD(1x920x1080) 해상도의 5.1인치 화면을, P10 플러스는 QHD(2,560×1,440) 해상도의 5.5인치 화면을 썼다. 둘다 화면 테두리를 최소화했지만, 아무래도 손에 쥐는 느낌은 크기가 작은 P10이 좀더 낫다. 또한 저장 공간도 다르다. P10은 64GB, P10 플러스는 128GB다. 램은 P10 4GB, P10 플러스 6GB로 2GB 정도 더 많다. 또한 화웨이 P10 플러스는 적외선 센서를 포함했고 LTE 수신 방식도 4×4 MIMO를 적용했다. 전반적으로 두 제품만 놓고 볼 때 P10 플러스가 확실한 플래그십으로 느껴지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닐 것이다. 참고로 두 제품 모두 하이실리콘 기린 960 프로세서를 실었고, 안드로이드 7.1 누가 기반 EMUI 5.1을 운영체제로 쓴다.
어쨌거나 제원이 다른 만큼 가격도 다르다. 화웨이 P10은 649유로, P10 플러스는 699유로다. 출시는 3월. 이날 1차 출시국도 공개했는데, 우리나라는 없다. 모든 것은 국내 이동통신사와 협상 여부에 운명이 결정된다. 우리에게 화웨이 P10과 P10 플러스는 운명을 알 수 없는 스마트폰인 것이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