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3일 게이밍 성능을 강화한 인텔 8세대 코어 H를 포함한 5가지 프로세서를 발표하던 그 시각, 대부분의 PC 제조사들도 새로운 프로세서를 탑재한 새로운 게이밍 PC와 노트북의 엠바고를 해제했다. 그 중에는 지난 몇 년 동안 ROG(Republic Of Gamers)라는 게이밍 브랜드에 공을 들였던 에이수스도 섞여 있었다. 에이수스 역시 인텔의 새 프로세서를 탑재한 게이밍 PC와 게이밍 노트북의 개발에 적극적으로 나선 결과를 같은 날 공개한 것이다.
에이수스에서 공개했던 8세대 코어 H 게이밍 제품군 가운데 눈길을 끄는 게이밍 노트북이 하나 있다. 제피러스(Zephirus) M GM501. 인텔 코어 H를 탑재한 초슬림 게이밍 노트북이다. 에이수스가 가장 얇고 가벼운 게이밍 노트북이 될 것이라고 주장하는 제품이다. 실제 게이밍 노트북 관점에서 1.99cm의 두께와 2.45kg에 불과한 무게만 보면 제법 설득력은 있어 보인다.
물론 제피러스 M GM501이 가장 얇고 가벼운 에이수스의 게이밍 노트북은 아니다. 사실 에이수스는 지난 해 컴퓨텍스에서 제피러스라는 더 얇고 가벼운 게이밍 노트북으로 신고식을 치른 터다. 때문에 키보드나 트랙패드 등 디자인 변화를 제외하고 두께와 무게 측면만 따지면 제피러스 M GM501을 완전히 다른 느낌을 주는 신선한 제품으로 보이진 않는다.
이처럼 얇고 가벼운 게이밍 노트북이 마치 쉽게 나오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게이밍 노트북에서 두께와 무게를 잡는 일은 쉬운 게 아니다. 고성능 그래픽 카드를 이용해 뛰어난 화질과 부드러운 움직임의 데스크톱 게이밍 수준으로 즐기기 위해 게이밍 노트북에도 고성능 그래픽 칩셋을 탑재해야만 한다. 문제는 이에 필요한 배터리 성능과 발열 대책을 준비해야 한다는 점이다.
대용량 배터리와 발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필요한 부품을 넣다보니 덩치를 줄이는 데 한계가 있던 게이밍 노트북들이 갑자기 훌쭉하게 등장한 것은 채 1년도 지나지 않은 지난 해 컴퓨텍스 때였다. 에이수스와 에이서, 기가바이트 등 게이밍 노트북 제조사들이 얇고 가벼운 초슬림 게이밍 노트북을 동시에 선보인 것이다. 이 제품들의 공통점은 엔비디아의 고성능 GPU 기반의 맥스 큐(Max-Q) 디자인을 적용한 점이다.
엔비디아 맥스 큐 디자인은 GPU가 요구하는 전력을 무작정 공급하지 않는다. 대신 그래픽 성능을 올리는 데 미치는 영향이 미미한 전력의 최고 지점을 찾아낸 뒤 그 전력에 맞춤 설계된 하드웨어와 전용 드라이버로 GPU 성능을 제한함으로 배터리 성능과 GPU 성능의 균형을 잡아 발열을 줄이고 좀더 얇은 구조로 개선할 수 있도록 정의한 것이다. 에이수스 제피러스 GX501은 엔비디아 맥스 큐 디자인을 적용했던 제품 중 하나로 당시 GTX 1080 맥스 큐 디자인을 GPU로 썼다.
GM501이 흥미로운 점은 엔비디아 맥스 큐 디자인을 적용하지 않았으면서 거의 비슷한 두께와 무게를 실현했다는 점이다. 물론 바닥면을 살짝 들어올려 발열 환경을 만드는 GX501의 디자인을 차용했지만, 전력에 맞춰 강제로 성능을 제어하거나 맥스 큐 전용 드라이버를 깔지 않는다. GM501은 순수한 GTX 1070을 실어 전력 대비 성능 제한을 두지 않는다. 보통 맥스 큐 디자인의 GTX 1080은 90~100W 전력에서 코어 부스트 클럭을 1468MHz까지 끌어올리지만, 이 디자인에 적용 받지 않는 GTX 1070은 최대 성능을 낼 수 있도록 115W까지 전력을 공급하고 부스트 클럭을 1645MHz까지 높인다. 때문에 성능 면에서 맥스 큐 디자인의 GTX 1080보다 떨어지는 것도 거의 없을 뿐만 아니라 게이밍 상황에 따라 더 나은 결과를 보이기도 하고 반대의 결과를 낳기도 한다.
이처럼 성능 측면에서 맥스 큐 디자인을 쓰지 않을 수 있지만, 문제는 발열과 배터리다. 에이수스가 발열을 위해 선택한 것은 앞서 소개한 대로 바닥면을 들어 올려 노트북 안으로 들고 나는 공조 시스템을 개선했지만, 종전 5V 팬 대신 12V 고전압 팬으로 바꿔 팬속도를 올리고 공기 흐름을 가속한다. 많은 열을 발생하는 그래픽 칩셋의 상황으로 볼 때 이 설계는 바람직해 보인다. 물론 빨라지는 만큼 소음은 각오해야 하겠지만…
하지만 이렇게 발열은 해결했어도 여전히 배터리라는 산을 넘어야 한다. GM501의 배터리는 55Wh로 게이밍 노트북에서 넉넉한 용량이라 볼 수는 없다. 더구나 전력 제한 없이 성능을 중심으로 설계된 게이밍 노트북이다보니 적은 배터리 용량은 갑갑하게 보인다. 실제로 GM501에 대한 리뷰 가운데 랩톱 매거진은 일반 모드에서 인터넷 이용만으로 2시간 50분 밖에 쓰지 못했고, 내외장 그래픽 옵션을 선택하는 옵티머스 기술로 내장형 그래픽으로 전환한 뒤에야 5시간 40분 작동했다고 밝혔다. 게임을 실행시켜 최대 성능으로 테스트한 노트북체크닷넷의 배터리 실험 결과는 고작 1시간. 배터리만으로 게임을 즐기는 것은 어려운 일로 받아들여야 할 결과를 내놓았다. 따라서 이 노트북 이용자들에게 어댑터는 옵션이 아니라 필수 휴대 아이템이 될 듯하다.
분명 짧은 배터리 시간은 게이밍 노트북의 치명적인 문제로 지적될 수도 있지만, 엔비디아 그래픽 칩셋을 심은 게이밍 노트북 제조사들은 맥스 큐 디자인이 아닌 순수한 칩셋을 넣을 가능성이 더 높다. 제조상 정책과 생산 단가 문제가 걸려 있기 때문이다. 제조사 입장에서 볼 때 맥스 큐 디자인의 제품을 내놓는 것이 훨씬 까다롭고 비싸다. 맥스 큐 디자인의 노트북을 출시하려면 제조사에서 설계한 제품을 엔비디아에서 실험하고 드라이버를 조정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엔비디아의 확인 없이 맥스 큐 디자인의 노트북을 내놓을 수 없는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또한 엔비디아에 지불할 비용은 따로 없다고 해도 이 과정을 조율하는 데 걸리는 시간과 조정에 따른 비용도 고려 대상이다.
무시할 수 없는 또 다른 이유는 GPU의 단가 차이다. GTX 1080 맥스 큐 디자인과 그냥 GTX 1070이 비슷한 성능을 낸다고 볼 때 CPU 단가를 고려하면 솔직히 맥스 큐 디자인의 1080을 고집할 이유가 사라진다. 맥스 큐 디자인의 GTX 1080을 쓰는 얇은 게이밍 노트북의 배터리 시간이 엄청날 만큼 길어지면 모를까, 어댑터 없이 즐길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별로 없다면 결국 제조사들은 좀더 값싸게 그만한 성능을 낼 수 있는 GTX 1070에 더 매력을 느낄 법하다.
아마도 맥스 큐 디자인을 쓰지 않더라도 초슬림 노트북을 만들 수 있고 이로 인해 얻게 되는 이점을 제조사들이 공유하면 아마도 맥스 큐 디자인은 자연스럽게 퇴장할 수도 있다. 어차피 엔비디아에서 맥스 큐 디자인의 브랜드화나 게이밍 노트북을 위한 마케팅에 나설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으므로 제조사들은 GPU의 가격이나 제조 정책의 유연성 같은 현실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당장 맥스 큐 디자인의 게이밍 노트북을 전혀 볼 수 없는 것은 아니라 믿지만, 초슬림 노트북 시대의 문을 찬란하게 연 맥스 큐 디자인의 역할은 여기까지라 해도 이상할 게 없는 순간이다. 엔비디아가 아쉬워 하는 게 아니냐고? 오히려 선택이 쉬워지는 초슬림 노트북의 시대를 더 반가워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