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V 시리즈 등장 이후의 LG에게 묻는 것이 있다.
“G와 V는 무엇이 다른가?”
이 짧은 질문의 답은 쉽게 나오기 어렵다. LG의 임직원들이 피할 수 없는 질문이지만, 확실하게 답할 수 있는 이는 드물다. G와 V. 옵티머스를 버린 G는 뜻도 없고, 모험(adventure)에서 따온 V는 의미도 퇴색됐다. G만의 가치, V만의 특징을 한 줄로 요약할 수도 없다. G가 좋으면 그 다음의 V는 더 좋고, 그 뒤의 G는 더욱 뛰어난 제품일 뿐. 그 이후의 V는 G보다 나은 제품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려 줄 뿐이다. 따지고 보면 모든 게 G 시리즈이고, 그 이름만 다른 V 시리즈인 셈이다. 내가 제목에 단 ‘위대한 승리'(Great Victory)는 이들에게 작은 힌트가 되길 바라지만, 이들이 바라는 위대한 승리는 기대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왜 그럴까?
온라인의 호의적인 평가, SNS의 따뜻한 이야기에 둘러 쌓여 있는 LG G6를 MWC 발표 현장에서 처음 봤을 때 나는 단순하지 않은 불안감을 휩싸였다. 제품을 잘 만들지 못해서도, 심각한 하자를 발견해서도 아니다. LG 플래그십 중 가장 정상적이라는 평가에 흔쾌히 동의를 끌어낼 만한 만듦새를 가진 G6는 LG 플래그십 전략의 여러 불안 요소를 그대로 담은 총합처럼 느꼈던 것이다. 그리고 G6로 드러날 수 있는 그 문제들이 벌써 수면 위로 조금씩 올라오고 있다. 누군가는 애써 외면하는 문제 말이다.
G와 V, 투 트랙 전략에 맞지 않는 제품 철학
상반기 G, 하반기 V라는 LG 플래그십 스마트폰 전략을 실행한 것은 2015년부터다. 햇수로 따지면 2년이 조금 지났을 뿐이다. 그 이전에는 상반기 G 시리즈와 더불어 G프로, G플렉스 같은 플래그십에 가까운 실험작들이 상반기에 등장해 하반기 제품 전략이 애매했던 LG였다. 다행히 V 시리즈를 공식화(?)한 이후 상반기 G시리즈와 겹친 플래그십 제품군을 치워 LG 스마트폰 전략의 불확실성을 걷어낸 것에 더 의미를 둘 수 있던 발표였다.
그런데 상반기와 하반기로 나눈 투 트랙 전략은 단순히 두 개의 최신형 플래그십 스마트폰을 선보이는 게 아니다. 서로 다른 시장을 공략하거나 개척하려는 뚜렷한 목적을 품고 있다. 투 트랙 전략으로 들어갈 제품은 기능이나 성능, 방향의 뚜렷한 차별성을 통해 이용자에게 선택의 폭을 넓혀 기존 제품에 미치지 못한 영역의 소비자를 확대하는 것이 핵심이다. LG도 처음 V시리즈를 발표할 때 분명 그 방향성을 몰랐던 것은 아니다. 당시 LG V10 상품 기획자는 LG 블로그에서 이렇게 답했다.
“G시리즈가 최고의 기술적 조합을 시도했다면 V시리즈는 트렌드를 이끌어가는 새로운 감성적 가치를 제공하고자 기획하게 되었습니다.”
출처: <http://social.lge.co.kr/view/the_bloger/lg_v10_interview2/>
대중과 시장의 평가가 어찌됐든 적어도 V 시리즈의 기획 방향 자체는 틀렸다고 말하긴 어렵다. 문제는 최고의 기술적 조합이라는 G 시리즈와 새로운 감성적 가치의 V시리즈를 구분할 수 있을 만큼 두 시리즈의 차이점이 두드러지게 지금 나타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정말 G 시리즈는 기술적 조합이 가장 뛰어날까?’, ‘정말 V 시리즈는 새로운 감성적 가치를 제시하는가?’라는 질문에 ‘그렇다’라고 자신 있게 답할 수 없는 데는 V10 이후 G5, V20, G6로 이어지는 3번의 기회에서 두드러진 차별점을 만들어내지 못한 탓이다. ‘기술’과 ‘감성’으로 구분되는 분명한 지향점을 갖고 있음에도 1년 만에 공개한 V20은 감성적 채취가 사라진 데다 오히려 쿼드 DAC이나 더 나은 카메라 등 최고의 기술적 조합까지 모두 갖추면서 G시리즈의 색채를 흐릿하게 만들었다. 더구나 V20에 비해 LG G6는 성능을 비롯한 모든 요소에서 최고의 기술 조합도 아닐 뿐더러, V20을 능가하는 역량을 갖춘 것도 아니기에 그 정체성에 의문을 갖게 한다.
LG 플래그십의 정체성 문제는 제품 사이클을 주도할 수 있는 힘이 없는 LG의 현실적인 어려움이 숨어 있다. 차기 스마트폰의 성능과 이용자 경험을 이끌 모바일 프로세서나 이미지 센서 같은 핵심 부품과 운영 체계에 대한 대외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은 상황이기에 LG가 기술 집약형 제품을 선제적으로 내놓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것이다. 특히 퀄컴이 출시한 모바일 프로세서의 성능이나 출시 시기는 곧바로 LG 플래그십 스마트폰의 평가와 출시에 영향을 미치는 데도 불구하고 퀄컴과 주고받는 긴밀한 관계를 깨고 유리한 입장에서 고를 만한 다른 선택지가 LG에게 남아 있지 않다. 그러니 상황에 맞는 부품으로 제품을 내놔야 하는 마당에 G를 기술 집약으로, V를 감성 가치로 나눌 여유 마저 잃었다.
LG 투 트랙의 문제는 비슷한 전략을 가진 다른 제조사와 비교할 때 더 두드러진다. 삼성은 상반기 갤럭시 S시리즈, 하반기 갤럭시 노트 시리즈를 출시해 왔다. 갤럭시 S는 현존하는 부품에 기반한 최상의 성능을 이야기하는 반면, 하반기 노트는 성능이 아니라 펜과 새로운 기능을 더하는 이용자 경험을 강조한다. 화웨이도 이와 비슷하다. 화웨이는 라이카와 함께 완성한 최신 카메라 기술을 넣은 스마트폰을 상반기에 출시하고, 하반기는 새로운 카메라 기술보다 화면과 성능 위주의 플래그십을 강조한다. 삼성은 꽤 오래 이 같은 투 트랙 전략으로 두 플래그십 스마트폰의 정체성을 확립한 반면, 화웨이는 상당한 기간 동안 혼란을 겪은 뒤 지난 해부터 이 같은 전략으로 자리를 잡아가는 중이다. 두 제조사의 흥미로운 공통점은 플래그십 라인에서 외부 의존도는 LG에 비해 현저히 낮다는 점이다.
이 같은 경쟁사의 패턴을 LG가 그대로 따라할 필요까지는 없을 수도 있다. 적어도 G와 V가 어떻게 다르냐를 바로 알 수만 있는 상황이 된다면 말이다. 하지만 LG의 G와 V가 정체성을 갖추려면 이러한 상황을 반영한 새로운 플래그십 전략을 세워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나를 비롯한 수많은 이들이 이 질문을 계속 던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G와 V는 무엇이 다른가?”라고…
단통법 시대의 전투력 잃은 G와 V
현재 시행 중인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이하 단통법)은 반드시 올해 9월 30일에 개선되어야 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아직은 단통법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여전히 우리는 새로운 단말기를 살 때마다 받을 수 있는 보조금의 상한선에 대해 이야기를 들어야 하고, 고작 찔끔 뿐인 이통사 보조금과 통신비 할인 중에 선택하는 기로에 선다. 하지만 보조금 상한선이 영구히 설정된 것은 아니다. 새로운 제품 출시 후 15개월까지만 보조금 지급을 제한한다. 그러니까 제품 출시 후 15개월이 지나면 시장 상황에 따라 해당 제품의 보조금을 자유롭게 조절한다는 이야기다.
아마도 많은 이들은 15개월이나 지난 제품을 누가 살까라고 푸념을 늘어 놓을 것이다. 흥미롭게도 단통법은 그 15개월 이상 생존 가능한 제품에 더 전투력을 부여하는 아이러니가 있다. 새로운 제품이 출시될 때 훨씬 더 나은 성능과 최신 기능을 쓰기 위한 ‘신제품 효과’라는 게 작용하지만, 한편에서는 이 신제품 효과를 차단하기 위해 더 많은 보조금을 뿌리며 신제품으로 옮겨가는 것을 차단하기도 한다. 신제품을 내놓을 때마다 경쟁사들의 신경전은 TV나 온라인 마케팅이 아니라 스마트폰 매장에서 극에 달한다. (물론 여기서 ‘제조사 보조금’이라는 실탄이 영향을 미치는 건 다 아는 비밀이겠지만…)
그런데 이 부분에서 돌아봐야 할 게 있다. 아무리 보조금을 뿌려도 신제품 효과를 누리는 제품이 있는 반면, 신제품 효과가 차단 당하는 제품이 있다는 점이다. 신제품 효과를 누린다는 이야기는 보조금을 투입하는 경쟁사의 노력이 헛수고라는 이야기고, 차단 당하는 것은 신제품의 경쟁력이 약하다는 말이다. 여기서 경쟁사의 신제품과 싸워야 하는 것이 바로 구형 플래그십이다. 그러니까 15개월이나 지난 구형 플래그십이 경쟁사의 신제품 효과를 억제하는 최종 무기가 되는 셈이다. 물론 출고가 인사나 보조금이라는 실탄이 함께 실려 있어야 하는 조건이지만, 플래그십 자체의 전투력 없이 신제품에 맞서는 것은 무리다.
플래그십 스마트폰이 출시 후 2년 가까이 생존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18~24개월 전에 시작되는 제품 기획에서 출시할 그 순간이 아니라 2년을 버틸 만큼 트렌드를 유지하는 게 어디 쉬운 일일까? 2년을 버틸 수 있는 꾸준한 생산, 재고, 유통까지 관리해야 하는 비용도 만만치 않고, 무엇보다 시간이 흐른 뒤에도 제품의 경쟁력을 느낄 만큼 이미지까지 유지되어야 한다. 그것이 제품이든 제조사든 또는 그 무엇이든 신제품을 선택하지 않아도 될 이미지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나는 이 지점에서 LG G시리즈와 V시리즈의 이미지가 어떤 지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여긴다. LG G6가 보조금이라는 실탄을 얹은 구형 제품과 이미지 경쟁력에서 우위를 점하는 부분이 있기는 한지, 반대로 곧 나올 경쟁사의 신제품 효과를 차단할 플래그십의 전투력과 LG의 경쟁력은 있는가 말이다. 전자로 인한 문제가 G6 출시 전에 이미 드러났던 마당에 다음 달이면 구원 투수로 투입해야 하는 V10의 전투력으로는 아무리 실탄을 싣는다고 해도 정답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G5는 어떤가? 시장의 실패를 G5의 실패로 인정해 버림으로써 구원 투수의 길마저 막아버린, 그릇된 자기 부정으로 인한 피해를 겪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지난 해 2분기 판매 실적을 두고 G5는 실패했다는 말을 꺼낸 게 뼈아프다. 모듈 생태계를 구축하지 못한 무능함을, 제품의 완성도를 높이지 못한 안일함을, 경쟁자에 미치지 못한 성적 부진의 책임까지 모두 제품에 뒤집어 씌웠다. G5를 샀던 수많은 구매자는 한 순간에 실패작을 구매한 꼴이 됐다. 결국 실패한 제품이라는 주홍글씨를 새긴 G5에서 무슨 전투력을 찾는가?
투 트랙 전략의 정체성을 세우지 못하고 너무 많은 시간과 비용을 썼다. 단통법 시대를 읽지 못한 플래그십 전략이 이 같은 결과로 이어질 것을 예상하지 못했을 수 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오늘만 사는 자세다. 당장 사업부가 살아야 한다는 위기감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제품의 철학이라는 뼈대 없이 집을 지을 수는 없는 일이다.
오늘만 사는 LG 스마트폰의 위대한 승리(Great Victory)는 불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