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삼성이 신생아실에 고이 눕혀 놨어야 할 갓난아기 같은 빅스비를 위해 언팩의 상당한 시간을 허비했는지 아직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빅스비를 향한 삼성의 편애와 달리 언팩을 지켜 본 이들의 타임라인에 긍정적 반응을 보인 것이 따로 있다는 것은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다. 삼성 덱스(Samsung DeX). 언팩을 닫을 무렵 아주 잠깐 존재를 알렸던 기능이다.
낯선 이름일지라도 개념은 낯설 게 느껴지지 않을 수 있다. 삼성 덱스는 스마트폰을 도킹 장치에 꽂으면 연결된 모니터에 윈도 같은 데스크톱 화면을 띄우는 확장 기능이라서다. 이미 HDMI나 무선 미러링으로 스마트폰 화면을 더 큰 화면에 표시해 본 이들에게 이 정도라면 별 것 아닌 기능처럼 보일 것이다. 하지만 삼성 덱스가 종전과 같은 경험을 주는 기능이라면 이런 글을 쓰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쯤은 더 빨리 눈치챘을 것이다.
삼성 덱스는 스마트폰과 똑같은 화면을 다른 디스플레이에 띄우는 미러링이 아니다. 구글 캐스트처럼 인터넷 기반 동영상을 스트리밍하는 캐스팅하면서 스마트폰으로 제어하는 기능도 아니다. 모니터나 TV에 삼성 덱스가 들어 있는 갤럭시 S8 시리즈를 연결하면 스마트폰과 관계 없는 듯한 전혀 다른 PC 같은 바탕 화면이 뜬다. 모니터나 TV에서 작업하기 편하게 만든 전혀 다른 PC형 인터페이스, 그것이 삼성 덱스다.
PC형 인터페이스라는 말은 비록 PC로 부를 수는 없을 지라도 PC처럼 쓸 수 있는 재주라는 뜻이다. 이는 그동안 스마트폰을 들고 다니는 PC라고 말했던 이들의 로망에 한 걸음 더 다가간 것이다. 스마트폰의 처리 성능이 PC 수준에 가까워지고 있기는 해도 PC나 노트북 같은 데스크톱 환경의 적응력이 거의 없던 모바일 장치의 한계를 조금 더 확장한다. 갤럭시 S8의 주변 장치로 소개됐던 덱스 도킹 스테이션에 단말기를 꽂는 순간 스마트폰은 스마트폰이 아니라 PC의 특성에 가까워지는 것이다.
이제 삼성 덱스에 한 걸음 더 들어가 보자. PC 같은 화면을 말할 때 우리는 흔히 마우스와 키보드(또는 트랙패드)로 다루기 편한 윈도-물론 맥 이용자에게는 OS X-를 떠올릴 것이다. 삼성 덱스는 윈도와 비슷하다. 모니터의 해상도에 맞는 넓은 바탕 화면과 몇 개의 아이콘, 작업 표시줄과 트레이 아이콘, 앱을 모아 놓은 프로그램 화면까지 매우 익숙한 형태다. 복사하거나 붙여 넣는 키보드 단축키도 작동하고, 마우스로 끌어다 놓기도 된다. 윈도의 시작 버튼만 없을 뿐 이용 경험은 낯설지 않다.
이처럼 PC와 비슷한 삼성 덱스는 새로운 운영체제를 심은 게 아니다. 갤럭시 S8의 운영체제인 안드로이드 N 위에서 작동하는 확장 기능일 뿐이다. 우리가 이전에 볼 수 없던 안드로이드의 인터페이스이고, 안드로이드 앱을 데스크톱 PC처럼 실행하고 다룰 수 있게 만든 것이다. 결과적으로 삼성 덱스를 넣은 갤럭시 S8이라는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을 PC처럼 쓸 수 있게 변형한 인터페이스다.
물론 단순히 데스크톱의 구성만 비슷한 것은 아니다. 덱스에서 실행한 안드로이드 앱도 마치 윈도 PC에서 응용 프로그램을 실행하는 것처럼 창 모드로 띄운 뒤 크기를 조절하고 위치를 자유롭게 옮길 수 있다. 여러 개를 동시에 띄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쉽게 전환할 수 있으며, 인터넷 브라우저 역시 하나만 실행하는 게 아니라 여러 창으로 나눠서 작업할 수도 있다. 실행한 앱 위에 커서를 올리고 마우스 오른쪽 버튼을 눌러 메뉴를 띄우고 고르는 것까지 똑같다.
그렇다고 모든 안드로이드 앱이 삼성 덱스에서 실행되는 것은 아니다. 사실 삼성 덱스에서 실행되는 앱은 덱스 환경에 최적화되어 있어야 한다. 삼성 덱스 개발자 사이트는 덱스 비호환 앱을 창 모드로 실행할 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으나, 지난 언팩과 삼성 덱스 공식 웹사이는 호환 앱의 실행을 기준으로 설명했다. 일단 안드로이드 N에 맞춰 개발한 앱 가운데 다중 창(Multi-Windows)과 창 크기 조절을 명시적으로 정의하고, 키보드/마우스에 대응하도록 정의한 앱은 된다. 다중 창 모드, 크기 조절을 명시하지 않은 앱은 일부 기능을 쓰지 못해도 고정 창 모드로 실행할 수 있지만, 위젯 기반의 앱과 터치로만 작동하는 앱은 덱스에서 작동하지 않는다.
삼성 덱스에 최적화된 앱은 마이크로소프트 워드 모바일. 파워포인트 모바일, 엑셀 모바일 같은 생산성 앱과 크롬 브라우저, 유투브, 구글 플레이 등 기본 앱, 어도비 라이트룸과 포토샵 익스프레스, 아크로밧 리더, 오토캐드 모바일, 라인, 카카오톡 등 써드 파티 앱, 리니지 2 레볼루션과 트라이브스 등 게임을 포함해 모두 30개에 이른다. 갤럭시 S8의 메일, 음악, 동영상 같은 기본 프로그램까지 포함하면 덱스 최적화 앱은 좀더 늘겠지만, 그리 넉넉한 숫자로 보긴 어렵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오피스 제품군과 어도비 이미지 이미지 편집 프로그램 등 스마트폰을 업무에 활용하는 이들이 스마트폰의 좁은 화면을 벗어나 데스크톱 환경에서 좀더 편히 작업하는 것이 중요하다. 갤럭시 S8의 덱스 환경에서 워드, 액셀, 파워포인트를 작업한 뒤 그냥 스마트폰만 들고 외부에 나가 계속 작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스마트폰을 중심으로 유연한 업무 환경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한 것이 삼성 덱스다. 다만 유념해야 할 한 가지가 있다면 이 모든 앱이 모바일 버전이라는 점이다. 데스크톱 버전의 오피스 프로그램처럼 다양한 기능을 쓰기엔 한계가 있다.
모든 이에게 해당하는 상황은 아니지만, 이 한계를 깰 수 있는 방법으로 내놓은 것이 원격 데스크톱(Remote Desktop)이다. 비록 갤럭시 S8은 윈도가 없어도 클라우드 상의 가상의 PC에서 윈도를 실행하는 가상 데스크톱 인터페이스(VDI) 솔루션을 넣은 것이다. 삼성 덱스에 올린 VDI 솔루션은 시트릭스 리시버, VM웨어 호라이즌 클라이언트, 아마존 워크스페이스 등 3가지. 이들 VDI 솔루션은 무료가 아니라서 개인이 이용하는 것은 버거울 수 있으나 윈도 기반 응용 프로그램을 실행하고 있는 기업에게 갤럭시 S8은 좀더 적은 비용으로 업무 환경에 접근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준다. 그러나 일반 윈도 PC에 원격으로 접속할 수 있는 마이크로소프트 RDP를 제외한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
또한 앱 실행 제한 외에도 지금의 삼성 덱스는 4K 같은 고해상도 디스플레이에 대응하지 못한다. 최대 해상도는 풀HD(1920×1080)까지다. 훨씬 높은 해상도의 디스플레이를 가진 스마트폰이라 해도 외부 출력에는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모니터는 반드시 16대 9 비율이고 HDMI로만 연결할 수 있다. 키보드와 마우스는 필수다.
이처럼 모바일 장치를 데스크톱 환경으로 바꾸는 삼성 덱스가 스마트폰을 PC로 활용하려는 첫 시도는 아니다. 2011년 모토롤라는 ‘아트릭스’라는 이름의 스마트폰을 꽂으면 노트북으로 쓸 수 있는 랩독을 선보였다. 아트릭스의 성능이 미진하고 넷북 가격에 맞먹는 랩독의 가격, 소프트웨어의 낮은 수준으로 인기를 얻지 못했을 뿐이다. 또한 마이크로소프트는 윈도 10 모바일을 얹은 스마트폰에서 진짜 윈도를 실행하는 윈도 컨티뉴엄을 강화하려는 의지를 보였고, 모토롤라를 인수한 레노버 역시 스마트폰을 얹기만 하면 데스크톱 모드로 전환하는 원컴퓨트 모드를 시연한 바 있다. 덱스가 이들보다 나은 것은 좀더 유연하게 반응하는 것과 잠금 해제나 녹스 같은 보안 솔루션 만큼은 더 나은 부분일 것이다.
완벽에 가깝다고 말할 수는 없으나 PC와 비슷한 환경, 또는 그 스마트폰을 PC로 쓸 수 있도록 함으로써 스마트폰 한 대 만으로 두 가지 작업을 꿈꾸던 이들이면 덱스가 그 가능성을 실현해 줄 수 있는 희망을 가지게 될 것이다. 다만 ‘완벽하지 않다’는 그 반대편의 ‘다르다’는 부분은 쉽게 무시할 수 없다. 데스크톱 환경은 비슷할 지언정 똑같은 것은 아니라서다. 이 부분이 가장 해결하기 어렵다. 스마트폰의 데스크톱 환경에 적응하도록 유도해야 하지만, 삼성이 독자적 생태계를 위해 그만큼 투자할 지 미지수다. 덱스를 쓸 수 있는 주변 장치가 하나 뿐이고 정작 모토롤라 ‘랩독’ 같은 혁신적인 주변 장치에 모험을 걸지도 않는다. 스마트폰의 넘치는 컴퓨팅 파워를 활용하는 확장 측면에서 덱스는 긍정적이다. 하지만 그 자체의 독자적 생태계로 확장하려는 의지가 떨어지면 덱스에 대한 긍정은 곧바로 부정으로 바뀔 것이다. 이전의 삼성이 했던 서비스가 그랬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