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침이 6월 29일 자정을 넘어가자 기다렸다는 듯 넷플릭스의 메인 화면에 <옥자>가 떴다. 넷플릭스에서 투자하거나 자체 제작한 콘텐츠를 가리키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다. “극장에 걸리지 않는 영화에 황금종려상이 돌아간다는 것은 거대한 모순이 될 것”이라는 칸 영화제 심사위원장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한마디는 추락할 뻔한 봉준호 감독의 새영화 옥자를 구해내는 것과 동시에 넷플릭스로 통해 보는 영화의 개념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지 새로운 질문을 던졌다. 그동안 전혀 언급할 이유가 없던 ‘스트리밍’은 영화 산업에서 고찰해야 할 단어로 떠오른 것이다.
넷플릭스의 스트리밍과 극장 상영이 동시에 시작-사실 넷플릭스 스트리밍이 더 빨랐지만-된 그 날, 넷플릭스는 기술 설명회라는 이름으로 미디어 간담회를 개최했다. 영화 옥자가 넷플릭스 사상 처음으로 돌비 비전과 돌비 애트모스를 함께 지원하는 영화라는 점을 소개하기 위해서다. 돌비 비전은 훨씬 폭넓은 색을 표현할 수 있는 영상 기술이고, 돌비 애트모스는 각 장면의 소리를 공간의 여러 방향에서 들리도록 작업하는 음장 기술이다. 둘다 극장 영화에 쓰는 영상/음장 기술이다.
이날 넷플릭스에서 설명한 내용들은 단순하게 보면 돌비 연구소와 전략적인 제휴처럼 보인다. 그렇기에 간담회를 진행한 배경 자체가 신경 쓰일 수밖에 없던 것이다. 넷플릭스가 돌비 기술을 적용한 옥자 스트리밍에 대해 다른 의미를 전하고 싶었던 것이라는 점은 이해되지만, 또 다른 이유도 생각할 만한 미끼가 있는 것은 아닐까 해서다. 수많은 미끼 중에는 극장이 갖고 있던 기술 독점의 장벽에 대한 이야기도 들어 있을 듯 싶었다.
극장에 걸린 영화는 며칠 지나지 않아 IPTV에서 HD와 5.1채널 오디오로 인코딩해 유료로 판매된다. 영화가 가정까지 도달하는 속도는 매우 빨라진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들은 여기에는 극장에서 경험할 기술이 제외돼 있다. 하지만 옥자는 아니다. 극장의 기술을 모두 담았고, 배급도 극장만큼, 아니 극장보다 빨랐다. 옥자에 대한 영화적 평가야 관객의 몫이라 쳐도 옥자의 스트리밍을 둘러싼 배급 흐름은 매우 흥미로운 부분이 있다.
대부분은 극장에서 보는 영화가 집에서 보는 것과 다르다는 점을 잘 안다. 그것이 어떻게 다른지 구체적인 부분까지 이해하지 않아도 집과 극장의 시청 경험이 다르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다. 단순히 더 큰 스크린에서 상영하기 때문이 아니라 영상의 질과 음향 수준이 다르다는 점을 아는 것이다.
왜 다를까? 단순히 시설이 달라서일까?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시설은 창작자가 표현하려는 의도를 더 깊이 몰입하도록 동원한 영상/음장 기술을 풀어내기 위해 필요한 것들이다. 같은 장면이라도 창작자가 각 장면마다 그 의도를 극대화하기 위해 다양한 영상과 음향 기술을 활용한다. 문제는 이 기술이 모두 암호나 다름 없기에 극장들은 그 숨겨 놓은 의도를 보여주고 들려줄 시설을 장만한 뒤 1만원 넘는 관람료를 받고 2시간 안팎 좌석을 빌려준다. 이것이 극장의 사업 모델이었다.
이처럼 극장에서 즐기는 영화의 질적 차이는 존재하지만, 암호화된 영상/음장 기술이 적용된 극장 상영작을 집에서도 즐길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고 있다. 극장에 들어간 기술을 가진 장비들을 집에 갖추면 된다. 그것이 아주 특별한 장비는 아니다. 극장에서 도입한 기술을 볼 수 있거나 들을 수 있도록 라이센스를 갖고 있는 장치들은 의외로 가깝다. 돌비 비전이나 돌비 애트모스처럼 극장에서 즐기는 기술은 TV, AV리시버, 스피커, 프로젝터 등 다양한 형태로 나온다. 심지어 스마트폰이나 콘솔 게임기에서도 이 기술을 경험할 수 있다.
하지만 누군가 극장과 거의 비슷한 장치를 갖춘다 한들 그래도 그는 극장에 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극장에서 상영되는 그 영화를 같은 시각 집에서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창작자의 의도를 살리려고 쓴 기술을 녹인 영화는 극장 상영이 끝난 뒤 블루레이 디스크로 생산되어야만 비로소 이러한 장치를 이용해 다시 볼 수 있다. 극장 상영이 끝나고 수개월을 기다려야 하는 매체별 유통 기한들이 극장의 또 다른 장벽이다.
영화가 극장의 거의 유일한 콘텐츠인 상황에서 기술이 들어간 영화 유통은 극장의 생존에 매우 필수적일지 모른다. 흥미로운 점은 이처럼 극장을 중심으로 한 전통적인 콘텐츠의 유통 장벽은 영상 콘텐츠의 유통 그 자체가 사업 모델인 넷플릭에게 달가운 점은 아니다. 비록 넷플릭스가 극장을 적이라는 존재로 규정하지는 않을 지 몰라도, 극장 상영 이후 콘텐츠 유통은 넷플릭스의 사업 모델을 진화시키는 데 방해되는 것은 틀림 없다. (우리나라 멀티플렉스가 옥자의 동시 상영을 반대한 것은 넷플릭스가 설계한 논리의 함정에 빠지지 않겠다는 계산된 반발로 볼 수도 있다.)
때문에 넷플릭스의 선택은 직접 유통할 수 있는 영화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이 콘텐츠는 극장에서 경험할 수 있는 기술을 담는 것과 동시에 극장과 같은 시각에 서비스를 시작하고 언제나 자유롭게 집에서 극장과 똑같은 환경으로 볼 수 있는 콘텐츠여야 한다. 그 모든 조건을 충족한 첫 영화-사실 넷플릭스는 그 이전에도 <워머신> 같은 영화를 제작했지만-가 바로 옥자다. 넷플릭스가 굳이 ‘기술 설명회’라는 자리를 만들어 옥자에 적용한 돌비 비전과 애트모스에 대한 설명을 했던 것은 넷플릭스로 전송되는 콘텐츠가 극장에서 상영되는 영화와 같다는 것을 말하려고 했던 것이다.
물론 집에서 옥자를 볼 때 극장과 같은 느낌을 받으려면 갖춰야 할 장비가 만만치 않다. 우리나라에서 돌비 비전과 돌비 애트모스를 동시에 경험할 수 있는 TV는 LG OLED TV가 유일하다. 가격은 직접 검색해 보시라. 돌비 비전 버전의 옥자를 보려면 꼭 TV를 살 필요는 없다. 그것은 LG G6도 가능하다. 이 스마트폰만 돌비 비전의 옥자를 볼 수 있다. 그런데 TV만 있으면 볼 수 있는 돌비 비전과 달리 돌비 애트모스는 좀 복잡하다. 돌비 애트모스용 리시버나 스피커, 사운드바 같은 오디오 시스템을 장만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라서다. 구매하기 힘들 정도는 아니지만, 굳이 소리를 듣자고 사야 할 절실함을 느끼긴 어렵다. 물론 XBOX 원을 가진 이들은 체험판이든 구입을 하든 간에 엑스박스 원 스토어에 있는 플러그인을 설치하면 애트모스 재생 장치로 쓸 수는 있지만, 어차피 전용 스피커나 헤드폰이 없으면 무용지물이다. 돌비 연구소의 까다로운 -사실은 비싼- 라이센스 정책이 기술 대중화에 걸림돌이 된다는 지적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엄청난 비용까지는 아니어도 영화에 쓰인 돌비 기술을 보고 듣기 위한 장치가 너무 적어서 이용자의 선택권이 제한된 것은 현실적인 문제 중 하나다. 물론 장치 구매에 투자를 못할 정도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그 투자가 아깝지 않다 할 수도 없다. 이 장치를 활용할 콘텐츠 수가 턱 없이 적어서다. 지금 당장 돌비 기술을 경험을 할 수 있는 콘텐츠는 블루레이로 나온 이전의 영화들이므로 영화 마니아가 아닌 이들에게 값싸게 장소와 시설을 대여하는 극장과 비교하긴 어렵다.
그러나 당장은 아니더라도 넷플릭스 이용자에게 이러한 투자를 무리라며 무작정 말리기는 어려울 듯하다. 옥자를 시작으로 극장에서 즐기던 돌비 연구소의 영상/음향 기술이 자체 제작된 콘텐츠로 공개돼 차곡차곡 쌓이면 넷플릭스는 극장 수준의 콘텐츠를 가장 빨리 공개하는 서비스로 진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넷플릭스는 옥자 기술 설명회에서 자체 제작하는 콘텐츠에 돌비 애트모스를 적용하는 영화들의 이름을 불렀다. 7월 <블레임!>, 8월 <데스노트>, 12월 <브라이트> 그리고 <겟어웨이 드라이버> 등이다. 옥자를 포함해 극장에서 들을 수 있는 소리를 담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가 줄줄이 대기하고 있는 것이다.
2018년 일정은 알 수 없지만, 콘텐츠를 쌓아야 할 넷플릭스에게 그 계획이 전혀 없다고 보긴 어려운 상황이다. 넷플릭스 관계자들 역시 긍정도 부정도 않는다. 극장에서 상영될 돌비 기술의 영화를 거실 또는 안방에서 똑같이 보고 들을 수 있는 그 경험의 축적이 필요한 넷플렉스에게 지금 단계에서 멈추는 것을 생각할 수 없는 이유다. 아마도 넷플릭스에서 그 이전에 제작된 돌비 비전 또는 돌비 애트모스 영화들을 쌓아 놓고 스트리밍으로 제공할 시기에 이르기 전까지는 극장 경험을 살리는 넷플릭스 오리지널의 등장을 기대해도 될 것이다.
기술과 시간으로 세운, 견고할 것만 같던 영화관의 비밀 장벽은 옥자를 앞세운 넷플릭스와 함께 실험의 시간을 갖게 될 듯하다. 물론 당장 넷플릭스의 실험으로 영화관이 문을 닫을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넷플릭스 역시 영화관을 적으로 삼고 무너뜨리기 위해 이런 일을 기획한 것이 아니다. 그저 영화, 영상물을 좀더 쉽고 빠르게 유통하려는 넷플릭스의 사업 모델은 과거에도 다른 유통 산업과 마찰을 일으켰고, 넷플릭스가 그것을 돌파하려 실험하는 과정에서 승패가 갈렸을 뿐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우편으로 DVD를 대여하고 웹사이트를 통한 스트리밍이 블록버스터라는 거대한 소매 비디오 체인을 역사의 기록으로 남게 만들 것이라고 예상한 이들은 몇이나 됐던가? 넷플릭스가 비디오를 빌려보는 관점을 바꾸는 데 힘을 보탠 것처럼, 이제 극장의 영화를 바라보는 관점을 바꾸는 것이 아닌지 의심하고 진지하게 고민하는 이들을 찾기 위해서 옥자의 기술 설명회는 분명히 필요했던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