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우 오랫동안 안드로이드 이용자로 지냈던 나 조차 아이폰 X에 의외로 쉽게 적응하고 있다는 사실이 조금 의외인 듯 싶다. 물론 미립자 팁까지 모두 알고 있는 아이폰의 열렬한 이용자에 비하면 그냥 눈에 보이는 재주나 앱을 써보는 수준에 불과할 뿐이지만, 이처럼 다른 환경의 스마트폰을 쓰면서 혼란을 겪지 않는 것은 너무 희한하다. 하지만 아이폰 X에 앞서 한달 남짓 썼던 아이폰 8 플러스는 달랐다. 이상한 이야기로 들릴지 모르는데, 아이폰 8 플러스에 대한 나의 적응은 완전히 실패했다.
그런데 아이폰 8 플러스에 대한 부적응과 아이폰 X의 쉬운 적응이 엇갈린 순간 막연한 짐작이 하나 있었다. 어쩌면 기존 아이폰 이용자들에게 아이폰 X가 불편할 수도 있을 거라는 점이다. 안드로이드에 익숙해 있던 내가 아이폰 X를 편하게 받아들이는 이유를 떠올려 보면 이는 기존 아이폰 사용자들에게 불편하게 만들 이유로 작용해도 이상할 게 없었다는 점이다.
물론 불편하지 않은 이유에는 만듦새도 포함된다. 카메라와 얼굴 인식 센서가 화면 상단 가운데만 조금 가리는 탓에 탈모 디자인이라 놀림 받는 아이폰 X의 노치 디자인(산과 산 사이에 움푹 패인 골짜기 같은 화면)은 더 기괴한 스마트폰이 많았던 안드로이드 세계에서 보면 그리 놀랄 수준은 아니다. 단지 자주보는 잠금 화면과 바탕 화면에서 그 부분이 두드러져 보기 흉한 것은 틀림 없는데, 모서리를 둥글게 다듬은 배경 이미지를 약간 아래로 내려서 바탕화면과 잠금 화면으로 저장했을 때 마치 카메라 양옆에 화면이 없는 것처럼 감쪽 같이 속일 수 있는 팁만 알면 별 문제도 아니다.
이상하다 싶은 모양새도 어렵지 않게 적응하는 것도 신기한 일이지만, 그보다 아이폰 X를 다루는 조작 환경의 영향이 훨씬 크다. 앞서 아이폰 8 플러스에 적응하지 못한 이유는 크게 보면 두 가지였다. 하나는 물리 홈 버튼, 다른 하나는 아래에서 위로 쓸어 올려 퀵 메뉴를 여는 방법이었다. 이 두 가지는 사실 아이폰 이용자들에게 매우 익숙한 구조일 테지만, 안드로이드 사용자들에게는 그렇지 않다. 매우 오래 전에 물리 홈 버튼의 실종 신고를 해온 안드로이드 이용자들에게 화면 아래 물리 홈 버튼을 점점 낯선 존재로 인식하고 있다.
구글이 안드로이드의 기본 GUI에서 물리 홈 버튼을 제거한 때는 안드로이드 3.0 허니콤을 발표한 201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거의 6년 전부터 시작된 일이다. 허니콤은 물리 버튼 대신 화면 위에 띄우는 내비게이션 버튼을 채택한 태블릿용 운영체제였고, 이를 기반으로 안드로이드 4.0 아이스크림 샌드위치부터 스마트폰 영역을 확장을 시도했다. 하지만 16대 9 화면비를 해치는 데다 물리 홈버튼에 익숙해 있는 환경에서 처음부터 환영받았던 것은 아니다. 대다수 제조사는 물리 홈 버튼을 고집했고, 이용자들도 물리 홈버튼을 눌러서 켤 수 있던 편의성을 쉽게 포기하지 않았다.
하지만 안드로이드에서 물리 홈 버튼이 사라지는 것은 시간 문제였다. 넥서스 시리즈를 비롯해 물리 홈 버튼을 없애는 제조사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특히 LG처럼 구글과 가까운 기업은 물론 신생 중국 제조사들도 적극 동참하면서 물리 홈 버튼을 쓰는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의 비율은 시간이 지날 수록 감소해갔다. 그나마 마지막까지 버티던 삼성 조차 갤럭시 S8부터 스크린 버튼과 물리 홈버튼을 결합한 형태로 바꾸면서 눈에 보이는 물리 홈버튼은 더욱 보기 힘들게 됐다.
이처럼 안드로이드에서 물리 홈 버튼은 점진적으로 잊혀진 존재가 되어 왔고 이 환경에 여기에 익숙해진 이용자들은 적지 않다. 나 역시 처음은 물리 홈 버튼을 없애는 것에 반대표를 던지는 쪽에 서 있었지만 지금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물리 홈 버튼이 주는 편의성은 컸을 지라도 지난 몇 년 동안 물리 버튼이 없는 제품에 적응기를 거친 지금이 더 불편해진 것은 아니라서다. 오히려 모든 조작을 화면 안에서 하는 만큼 화면 밖에서 해야 하는 조작이 더 어려워진 것이다.
그런데 스크린 버튼에 적응한 이후 다시 아이폰 8 플러스의 물리 홈 버튼을 적응하려니 여간 힘든 게 아니다. 홈 화면으로 돌아가거나, 이전으로 돌아가는 등 이미 익숙해진 화면 중심의 조작을 물리 홈 버튼으로 분산해야 하는 상황에서 혼란이 온 것이다. 하지만 물리 홈 버튼이 없는 아이폰 X는 아이폰 8 플러스와 다르게 안드로이드와 같이 화면 안에서 모두 조작할 수 있다. 물론 돌아가기 버튼이나 홈 버튼으로 돌아가는 과정은 다르지만, 물리 홈 버튼으로 분산시킬 필요가 없기 때문에 훨씬 쉽게 적응할 수 있다.
또한 아이폰 X은 화면 오른쪽 위에서 아래로 쓸어내릴 때 퀵 메뉴가 나타난다. 화면 위 액션 바에서 아래로 손가락을 쓸어 내릴 때 뜨는 안드로이드의 빠른 설정과 거의 비슷한 조작이다. 화면 아래에서 올리든, 위에서 내리든 기능은 같을 지라도 물리 홈 버튼의 사용성을 최대한 살리고 이를 중심으로 기능을 모았던 아이폰 8이나 그 이전의 아이폰을 쓸 때의 난해함에 비하면 화면 중심의 아이폰 X는 안드로이드 이용자에게 훨씬 쉽다.
때문에 나는 기존 아이폰 이용자들이 아이폰 X을 보는 우려의 시각을 어느 정도 이해한다. 페이스 ID가 터치 ID보다 보안성에 믿음을 주지 못하는 문제보다 홈 버튼의 사용성이 사라지는 것에 대한 불편과 두려움에 대해 공감한다. 몇 년 전부터 서서히 변화에 대한 적응력을 길러 온 덕분에 안드로이드는 그나마 거부감을 서서히 줄일 수 있었지만, 아이폰 이용자들은 갑자기 낯선 변화를 선택할지 말지 고민해야 하는 것 자체를 두고 당황스러워 보여서다.
언제나 이용자가 고를 수 있는 선택 항목을 넉넉하게 제시하지 않은 애플의 이러한 강요는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기에 새삼스러워 보이진 않는다. 다만 아이폰 X이 화면 아래 물리 홈 버튼 없는 아이폰의 미래를 시작하는 제품이라면 선택은 다른 게 없지 않은가. 안드로이드 이용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새로운 시대의 적응을 준비하는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