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시하자마자 손에 쥔 제품을 몇 달 동안 묵혀 두었다가 리뷰하는 일은 그리 흔치는 않다. 그러는 이유는 대략 이렇다. 리뷰할 가치가 없어서, 또는 리뷰할 때를 기다릴 필요가 있어서. 물론 더 많은 이유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쉽게 결론을 낼 수 있는 전자와 달리 후자의 이유는 시간이 지나면 더 많은 이야기를 담으려는 바람이 크게 작용한다.
하지만 그런 바람으로 오랜 시간을 보내도 별로 나아지지 않는 제품도 있기 마련이다. 픽셀 4가 그 조건에 딱 들어 맞는 예다. 구글이 지난 해 가을에 발표하자마자 구매했던 픽셀 4에 대한 이야기를 이제야 올리는 것은 시간이 지나면 좀더 나은 이야기를 전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였지만, 무의미한 기다림이었다.
무난해 보이는 만듦새
픽셀 4는 픽셀 3에 비하면 조금 혼란스러웠다. 픽셀 3는 쉽게 받아들일 수 있던 반면 픽셀 4는 처음부터 조금 난해했다. 옅은 핑크 빛이 돌았던 픽셀 3는 전면이나 단일 카메라로 구성했던 후면까지 생김새는 단순했다. 화려함은 없어도 산뜻하고 쉬운 스마트폰의 이미지가 있었던 전작과 달리 픽셀 4는 직설적으로 말하지 않는 생김새였다.
광택 없이 무광으로 처리한 후면은 빛의 강도에 따라 진한 귤색을 띄기도 하고, 핑크에 가까워지기도 한다. 원래 색이 변하는 처리를 따로 한 것은 아니지만, 빛에 따라 다른 색의 제품처럼 보이게 만드는 묘한 마법을 발휘한다.
다만 왼쪽 상단 모서리 한쪽을 차지하고 있는 커다란 사각형 카메라의 만듦새가 어쩐지 무성의하다. 겨우 두 개(?) 밖에 없는 카메라를 위해 이처럼 많은 공간을 잡아 둔 것도 이해하기 어렵거니와 어떤 디자인 흐름을 따라가기에 급급한 이미지도 없지는 않던 터다. 아마도 카메라를 보면서 뭔가 이야기를 할 만한 것을 찾아 내는 건 신의 영역에서나 가능한 이야기가 될 것같다.
그나마 픽셀 4는 덩치가 작은 편이라 손에 쥐었을 때 부담이 덜하다. 19대 9 화면비의 5.7인치 화면을 써 굳이 본체 크기를 늘릴 필요가 없어서다. 물론 늘 쓰던 큰 스마트폰에 비해 작은 덩치의 픽셀 4가 주는 반사 효과이나 그래도 조금 작은 덩치에 이만한 성능의 스마트폰을 찾기 쉽지 않은 만큼 희소 가치는 있는 듯하다.
여전히 기본기 좋은 사진, 단 별 촬영은 빼고!
픽셀 4의 카메라 생김새가 그저 그래도 사진 품질 만큼은 나를 안도하게 해준다. 무엇보다 픽셀 3 때에 비해 줌 카메라가 늘어난 것은 큰 힘이 된다. 픽셀 4의 카메라는 1600만 화소 2배 줌, 1,220만 화소 표준 카메라다. 1억 화소 시대에 아직 1600만 화소로 버티는 게 용하다 싶지만, 그래도 사진 품질은 믿을 만하다. 특히 조도가 약한 환경에서 찍는 사진과 줌 사진은 어지간해선 다른 스마트폰 사진과 비교하기 어렵다. 잘 훈련된 기계 학습의 좋은 예를 보여준다.
특히 감동스러운 점은 야간 사진보다 디지털 줌 사진이다. 픽셀 4는 2배 광학 줌과 4배 디지털 줌을 묶어 최대 8배 줌을 촬영할 수 있다. 그런데 디지털 8배라고 해도 믿기지 않는 사진을 찍는다. 마치 광학 8배줌이 아닐까 착각이 들 정도의 사진을 남긴다.
위의 샘플 사진을 보자. 이 사진은 양재역의 한 건물에서 거의 비슷한 시각 픽셀 4와 또 다른 스마트폰으로 역 이름을 8배 줌 사진을 찍은 것이다. 두 사진을 확대했을 때 픽셀 4로 찍은 사진은 작은 글씨로 써 있는 영문 노선 이름이 보이는 반면 다른 스마트폰은 전혀 알아볼 수 있는 지경이었다. 기계 학습으로 멀리 있는 피사체의 모습까지 선명하게 다듬어주는 능력이 좋다고는 해도 이 정도일 줄은 예상 못했다. 다른 제조사들이 광학으로 떡칠을 해도 나올까 말까 한 사진을 구글은 가볍게 해내는 인상이다.
픽셀 4의 줌 사진에 보내는 찬사만큼 전혀 칭찬하고 싶지 않은 기능도 있다. 천문 사진을 찍는 기능이다. 구글은 픽셀 4 발표회에서 이 기능을 아주 야심차게 발표했지만, 이 기능이 평상시 얼마나 쓸모 있는지 말하긴 어렵다. 천문 사진을 찍으려면 별을 볼 수 있는 날씨와 억제된 조명이라는 매우 제한된 조건을 충족해야 하고 별을 추적하기 위해 장시간 노출을 해야 한다.
또한 무려 4분 여의 노출을 견뎌야 겨우 한 장을 찍는데, 그동안 움직이지 않아야 하므로 거치대 같은 장비가 필수다. 거기다 100% 좋은 결과가 나오는 것도 아니다. 시간 낭비만 할 수도 있다. 기다림의 미학을 추구하는 전문 사진가가 아닌 이상 불확실성이 너무 큰, 일상에서 거의 쓸일이 없는 과한 기능에 구글은 재능을 낭비했다.
구글도 풀지 못한 숙제, 에어 제스처
여러 제조사들이 스마트폰을 손대지 않고 제어하는 에어 제스처를 특화 기능으로 선보였다. 하지만 잘 알려진대로 그런 스마트폰을 써본 대부분의 이용자들 중에 에어 제스처를 쓸만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런데 천하의 구글이 에어 제스처에 도전했다. 전파를 이용해 손의 위치를 이해하는 프로젝트 솔리 기술에 바탕을 둔 모션 센스를 넣어 몇몇 기능에서 이를 쓸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모션 센스 역시 구글의 재능을 낭비한 기능이다. 차라리 이 기능을 쓰기 위해 값비싸게 탑재한 솔리 칩 대신 비용을 비용을 내리는 편이 더 나을 뻔 했다. 물론 제스처는 잘 작동한다. 전화를 받을 때도 쓸 수 있고, 음악을 넘길 수도 있다. 그런데 그게 다른 에어 제스처도 했던 일이다. 기능이 잘 작동한다는 의미 만으로 그냥 넘길 이야기가 아니다.
뭐가 문제일까? 역시 터치보다 떨어지는 제한된 조작이 문제다. 모션 센스는 특정 앱과 상황만 작동한다. 예를 들어 유튜브 뮤직을 듣는 동안 모션 센스로 손을 대지 않고 곡을 넘기거나 알람이 울릴 때 일시 정지하는 있는 정도다. 그나마 음량 조절이나 음악을 멈추거나 다시 재생하는 기능도 없다. 음성을 쓰지 않고 기본적인 장치 제어를 할 수 있는 수준까지 이르지 못했다. 유일하게 쓸만하다 느낀 순간은 픽셀 4 위에 손을 올렸을 때 낮은 밝기의 잠금 화면이 켜지면서 시계를 볼 때 뿐. 지금 시점에서 구글을 에어 제스처의 유용함을 입증하는 데 실패한 제조사 목록에 포함해도 전혀 문제 없을 것이다.
기본기는 나쁘지 않으나…
만약 구글이 픽셀 4에 쓸 데 없이 재능을 낭비하지 않았다면 조금이나마 더 나은 평가를 받았을지 모른다. 90Hz의 화면 고침(개발자 모드에서 강제 90Hz로 고정 가능)으로 화면 이동이나 및 스크롤이 부드럽고 지문 인식 대신 들어간 얼굴 인식 기능도 매우 빠르고 어둠 속에서도 잘 알아챈다. 아, 얼굴 인식으로 잠금 화면을 곧바로 열 수도 있고 아이폰처럼 잠금 상태만 해제하는 옵션도 갖고 있다.
배터리는 걱정 했던 것보다 그리 심각하지는 않다. 배터리 용량은 픽셀 3(2,915mAh)보다 좀더 줄어든 2800mAh지만, 지속적인 최적화로 인해 종전 픽셀 3보다 더 빨리 소모된다는 인상을 받진 못했다. 다만 배터리가 적은 만큼 사진을 찍거나 동영상을 오랫동안 보는 등 사용량이 많은 작업을 하면 충전은 불가피하다. 그나마 급속 충전으로 15분만 충전해도 꽤 오랫동안 쓸 수 있다.
구글 파이(e심)와 일반 나노심 카드를 꽂아 듀얼 심 모드도 잘 작동한다. 외국 출장갈 때 아주 쓸모 있었는데 구글 파이로 데이터를 쓰고 국내 이통사 심카드로 전화를 받을 수 있도록 동시에 작동한다. 듀얼 심 모드는 픽셀 3a부터 지원하던 기능이라 픽셀 4는 어렵지 않게 활성화된다.
이처럼 스마트폰의 보편적 기능만 보면 픽셀 4는 꽤 탄탄한 기본기를 갖고 있다. 좋은 카메라 성능, 부드러운 화면 등 자주 접하게 되는 기능을 잘 다듬고 준비했다. 문제는 구글이 픽셀 4의 차별성을 강조하기 위한 잔재주에 재능을 낭비하면서 여러 불만이 쌓였다는 점이다. 픽셀 4의 새 기능에 들어갈 부품을 넣기 위해 유선 픽셀 버드를 빼는 등 원가 절감까지 했으나 새 기능의 가치가 그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올 가을에 발표할 픽셀 5는 그런 일을 반복하지 않기를 바란다. 구글 픽셀에 바라는 건 잔재주로 가득 채운 스마트폰이 아니라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가 잘 균형을 잡은 스마트폰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