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진 촬영을 마지막으로 갤럭시 노트7을 껐다. 아마도 갤럭시 노트7을 다시 켜는 일은 없을 것이다. 또한 어쩌면 내가 갤럭시 노트 시리즈를 써왔던 기록의 마지막 이야기일 수도 있다. 가장 노트 시리즈를 좋아했던 한 이용자가 그 시리즈를 포기할 수도 있다는 것은 가슴 아픈 일이다.
하지만 그 원인이 여러 차례 발화 사건을 일으켜 위험한 갤럭시 노트7을 더 이상 생산도, 판매도 하지 않는 결정에 실망해서 그런 게 아닌 것은 분명하다. 한 차례의 리콜과 또 다른 회수 절차를 거치면서 갤럭시 노트 시리즈의 이용자를 대하는 삼성전자의 태도가 너무나 실망스러워서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동의할 지 모르지만, 첫 제품부터 쓴 이용자로서 보는 노트 시리즈는 분명 여느 플래그십 스마트폰과 다른 것이라 말할 수 있다. 작은 화면의 스마트폰이 큰 힘을 발휘할 때 대형 화면을 채택하고, 터치 일색인 스마트폰에서 펜을 채택한 결단은 처음부터 다른 스마트폰과 확실한 구분점을 만들었으니까. 심지어 그것은 갤럭시 S 시리즈와도 다른 이미지의 시작이었다. 그냥 빠르고 성능 좋은 스마트폰이 아니라 처음부터 다른 제품으로 보이기 위해서 나온, 그러나 흐릿했던 갤럭시 노트의 밑그림은 시리즈를 거듭할 수록 다른 스마트폰이라고 말하기 쉬운 색채 또렷한 그림을 그려가는 것을 지켜봤던 이들에게 노트의 의미는 다른 것이다.
물론 첫 갤럭시 노트가 무조건 좋은 평가를 받은 것은 아니다. 큰 화면에 적응하기 쉽지 않은 덩치와 아직은 느린 펜 반응은 곧바로 비판을 받았다. 해마다 매 시리즈가 나올 때마다 논란도 있었다. 하지만 다른 제품이라는 이미지를 바꾸진 못했다. 오히려 시리즈가 거듭되고 제품의 완성도가 높아질 수록 그 이미지는 더 확고해졌다.
이런 배경에서 볼 때 갤럭시 노트7은 다른 스마트폰과 확실히 다른, 그 무엇보다 선도적인 이미지를 완성하는 제품이었다. 문제는 그 생명력은 오래 가지 않았다는 것이다. 갤럭시 노트7은 누군가의 주머니에서, 누군가의 침실에서, 누군가의 손에서 불탔다. 두달 전 최고의 제품이었지만, 지금은 최고의 위험이 된 것이다. 제아무리 높은 평가를 받았던 제품이라도 안전보다 중요할 수는 없다. 제품보다 사람이 먼저니까. 그러니 안타까운 일이지긴 해도 갤럭시 노트7을 회수하는 것은 타당한 조치다.
하지만 가장 완성도 높은 갤럭시 노트7을 돌려 보내야 하는 이들이 느끼고 있을 그 허탈감은 다른 문제다. 안전을 위해 제품을 돌려보내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노트 시리즈를 경험했던 이들에게 대안은 사실상 없다. 물론 잠시 노트7으로 넘어온 이들에게는 다른 스마트폰을 대안으로 삼을 수 있다. 그러나 처음부터 노트 만큼은 차별화된 길을 함께 걸어 온 이들에게 노트 이외의 대안은 상상하기도 어렵다.
노트 이용자들이 노트 이외의 대안을 찾는 일이란 곧 노트 시리즈를 포기하는 것을 뜻한다. 삼성은 그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또는 알면서도 일부러 무시하는지 모르겠지만,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이것이다. 지난 6년을 함께 이미지를 쌓아온 이용자가 노트 시리즈를 포기하는 것은 더 이상 삼성 제품을 우선 순위에 두지 않는, 충성 고객을 잃는 일이라는 사실이다.
그러나 삼성은 이번 대체품 교환 정책에서 이들을 조금도 배려하지 않았다. 열성적인 노트 이용자에게 주어진 선택권이란 단순히 환불 아니면 대체품 교환이라는 두 가지 옵션 뿐인 것이다. 이들을 미래의 이용자로 붙잡아두려는 전략적 차원에서 나온 결정이 아니라 삼성이 지금 취할 수 있는 가장 쉬운 선택권만 제시함으로써 이용자들을 들끓게 만들었다.
노트 이용자들은 되도록 노트를 포기하지 않고 싶어한다. 이들이 바라는 정책은 삼성 주머니에서 나와 다시 삼성 주머니로 돌아가게 만든 의미 없는 3만원 짜리 쿠폰과 삼성 제품으로 교체하는 조건으로 지급되는 7만원의 통신비가 아니다. 미래에 나올 노트를 쓸 수 있을 때까지 인내를 갖고 기다리게 해줄 약속이나 대안이다.
하지만 삼성은 불투명한 미래를 약속할 수 없다. 아니, 하지 않는다. 비록 ‘다른 갤럭시 노트 스마트폰을 살 것이냐?’는 샘모바일의 설문에 응답한 8천여명 가운데 91%가 그럴 것이라고 해도, 삼성은 미래를 약속하는 일 따위는 하지 않는다. 그게 삼성 스타일이란 건 이 바닥 사람들이면 안다. 지금도 브랜드를 접느니 마니 말도 많은데, 무슨 약속을 하겠나.
그렇다면 현실적인 대안은 다른 노트를 대체하는 것이지만, 이것마저도 소극적이다. 갤럭시 노트7의 대안이 다른 노트라는 것을 알고 있을 그들은 갤럭시 노트5를 중심으로 하는 대체 전략은 짜지 않았다. 1년 전 출시 제품을 갤럭시 노트7과 거의 같은 제품으로 취급하는 속내는 뻔하다. 어차피 선택지가 없다는 걸 알고 있으니 굳이 바꾸지 않는 것이다. 이 어이없고 뻔뻔한 상황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성질 뻗친 이용자들이 삼성이 올린 게시물마다 댓글을 달고 있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이미 1차 리콜에서 나는 고객에 대한 삼성의 소통 방식이 전근대적이라는 점을 지적했다. 매스 미디어를 대상으로 기자 회견을 갖고, 최고 책임자가 기자들의 카메라 앞에서 고개를 숙이는 걸 탓하는 게 아니다. 그 앞에서만 고개를 숙이는 게 전부라서다. 첫 리콜 사태 때도 그랬고, 단종 발표 이후에도 그랬다. 고객에게 메시지를 직접 전할 수 있는 접점이 많은 소셜 미디어 시대에 맞지 않는 이러한 소통 방식은 삼성식 위기 관리의 허점을 드러낸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다른 의미의 위기 관리를 말해야 할 것 같다. 고객에 대한 위로가 없는 전략에 고객이 진짜 떠나려 한다. 그것말고 더 큰 위기가 또 있는가?
나는 갤럭시 노트7을 껐다. 그리고 갤럭시 노트5로 돌아갔다. 하지만 내가 새로운 미래의 노트 이용자로 남을지 약속은 못하겠다. 어쩌면 갤럭시 노트5가 내게 있어 마지막 노트가 될 수도 있다. 메인 스마트폰을 떠난다는 것은 이 제품과 연계된 모든 삼성 생태계를 떠난다는 의미다. 약속도 없고, 위로도 없는 이 상황을 벗어날 유일한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