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해 LG가 V30을 내놓았을 때 했던 말이 하나 있다. 이제야 ‘LG의 기준이 되는 폰’이 나왔다고. 이는 LG가 말하는 ABCD(오디오, 배터리, 카메라, 디스플레이)의 기본을 잘 지켰다는 의미로 꺼낸 말이 아니다. LG에게 기준이 된다는 말은 “앞으로 만들 LG의 플래그십 스마트폰을 바라보는 기준점, 그러니까 LG가 만들어야 할 스마트폰의 기준점이 ‘V30’이라는 이야기다. V30보다 못한 ‘느낌’을 갖게 만들지 않는 것”이라고 그 맥락을 정리하기도 했다.
분명 ‘느낌’이라는 것은 사람마다 너무 주관적이고 추상적인 평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V30은 그 이전의 LG 스마트폰과 다른 느낌이 들었던, 전형적인 LG 스마트폰에서 보던 디자인 코드가 아니었다. 제품의 메시지를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도 단순하고 실용적이며 세련된 만듦새를 보여준 것에 후한 평가를 내렸다. 실제로 LG V30을 만져 본 이들 가운데 일부는 LG 스마트폰이 아니라고 말하기도 했고, 심지어 경쟁사의 S 시리즈로 착각한 이들마저 있었을 만큼 반응은 달랐다. 사용자가 가치를 이해하고 값을 치러야 할 플래그십으로써 갖춰야 할 성능과 단순한 메시지가 잘 어우러진 제품이었다.
그로부터 몇 달 뒤 발표한 G7은 다시 메시지에서 엇박자를 냈다. 기능과 브랜드 모두 인공 지능을 앞세웠으나 구글 서비스를 빼면 하드웨어와 기술적 부문에서 스마트폰에서 추구해야 할 AI의 본질에 접근하려는 고민의 흔적을 발견하기 힘들었다. 여기에 기술적 보완 없이 시대적 흐름만 좇은 노치 디자인을 적용했고, 제조에 용이한 구조로 특색이 사라지면서 플래그십의 메시지가 흐려졌다. 항상 남들과 다른 차별화를 앞세우던 LG 스마트폰의 고질병을 고스란히 드러낸 결과 G7은 V30과 달리 전통적인 LG 스마트폰의 계보에서 탈출하지 못하고 말았다.
때문에 LG V40이 플래그십 메시지를 잘 담아낸 V30의 평가를 다시 회복할 수 있는 제품이기를 바란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10월 4일 만난 LG V40은 1년 전만큼 간결하진 않았다. 제품을 보는 순간 바로 알 수 있을 정도로 간결했던 V30의 디자인 언어는 V40에서 고집한 차별화라는 욕심에 의해 뒤죽박죽 되고 말았다는 것을 알았다.
LG는 V40에서 인공지능을 강조하는 메시지를 거의 뺐다. 관련 기능을 없앤 게 아니라 여전히 남아 있지만, G7에서 의미 없는 AI 기능의 자랑은 되도록 줄였다. 또한 LG V40이 스마트폰으로써 제 기능을 못하거나 엄청난 문제점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LG V40은 최신 제원과 값비싼 부품을 채웠고, 비교적 만듦새도 깔끔하다. 개선된 노치 디자인의 6.4인치 풀비전 P-OLED 디스플레이에 대해서도 한마디 거들 수 있고 B&O 대신 협업을 선언한 메리디안 오디오 튜닝과 붐박스, DTS-X 등 온갖 오디오 기술까지 갖춰 이야기할 거리는 더 늘었다.
하지만 제품에서 말하려 했던 메시지는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다섯 개의 카메라를 가졌다는 것. V40은 광각, 표준, 줌으로 된 후면 3개, 광각과 표준으로 된 전면 2개 등 다섯 개의 카메라를 하나의 스마트폰에 집약했다. 특히 LG는 5개 카메라, 그 중에서도 후면에 있는 3개의 카메라를 정말 강조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과거 가로로 나란히 듀얼 카메라를 배열했던 그 자리에 하나를 더 붙여 3개의 카메라를 도드라지게 보이도록 만들었으니까. 굳이 3개를 찾지 않아도 이 스마트폰은 3개 카메라가 있다는 것을 절대 모를 수 없는 모양새다. 잘 눈에 띄지 않는 앞쪽의 듀얼 카메라와 확실히 대비된다.
꼭 이렇게 멋 없이 티를 내야만 하는 것이 최선의 결정인지는 모르겠다. 속된 말로 ‘모양 빠지게’ 티를 내는 것이 LG 스마트폰을 결정하는 이들의 DNA인지는 모르지만, 기괴한 느낌을 주더라도 이용자들이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을 했다면 그 결과를 지켜보는 것은 흥미로웠을 것이다. 무엇보다 5개 카메라를 넣으면서 늘어난 센서와 렌즈 모듈은 곧 원가 상승과 함께 제품 가격을 올리는 원인이다. 결국 LG V30보다 더 비싼 제품을 사야할 이용자들에게 5개 카메라를 넣은 V40은 충분하게 예쁘고 멋있으며 지불을 감수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명쾌한 답을 담았어야 했는데 그 부분이 불확실하다. 5개의 카메라를 넣었으니 비싸게 팔 수밖에 없다는 사업 논리가 아니라 그 돈을 기꺼이 지불할 만한 가치가 있느냐는 질문에 답했다고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LG가 V40에서 카메라의 숫자와 만듦새보다 먼저 해소했어야 하는 문제는 따로 있다. LG 스마트폰으로 찍은 사진에 대한 부족한 믿음 말이다. LG는 전통적으로 미디어 브리핑에서 기술적인 개선점을 설명한 경우가 드물었다. V30을 발표할 때 글래스 렌즈를 채택한 게 가장 친절한 수준이었을 정도다. 그나마도 이미지의 품질이 그 이전보다 얼마나 나아졌는지 비교 설명하진 않았다. LG는 새로운 스마트폰의 보도자료마다 늘 카메라 개발자들이 수백만번의 사진을 찍어가며 제품을 개발했다는 문장을 넣어 그 노고를 알아주길 바라지만, 결과적으로 그들의 노력이 어떤 기술로 이어졌는가를 설명하지 않아 당위성을 잃어 왔다.
광각, 표준, 줌으로 구성된 3개의 후면 카메라를 넣은 것도 마찬가지다. 상황에 따라 더 나은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옵션은 분명 좋은 점이다. 하지만 그보다 앞서 해결해야 할 점은 사진의 품질에 대해 이용자의 잃어버린 자신감을 찾아 주는 일이었다. 사진을 찍는 거의 모든 상황에서 LG 스마트폰으로 찍은 사진은 실패가 없고 가치 있다고 느낄 수 있도록 어떤 기술력을 담아 냈는지 모르는 이용자에게 LG는 설명을 하지 않는다. 자신감을 갖게 해줄 기술적 배경이 없는 상태에서 3개 카메라가 주는 가치를 설득하는 것은 무리다.
물론 3개 카메라를 순차적으로 모두 이용하는 트리플 샷이나 최근 스마트폰에서 선보이고 있는 보케 효과 등 V40의 카메라 기능이 모자란다고 보지 않는다. 5개의 카메라를 내놓기 위해 LG 전자는 수많은 고객의 이야기를 들었고 정리된 의견을 판단의 근거로 삼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 근거가 되는 데이터는 공개하지 않으면서 늘 보도자료마다 고객의 목소리를 들어 제품을 개발하고 서비스를 내놓는다고 한다. 조사 데이터를 기반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의 우선 순위를 정하고 이를 해결한 기술적 해법을 쉽게 설명해야 하는 데도 LG는 이를 피하는 인상이 짙다.
전문 카메라에 비할 바 못된다고 했던 과거와 달리 이제는 스마트폰은 광학 장치의 부족을 컴퓨팅 기술을 통한 보완으로 전문 카메라의 영역을 서서히 침범하고 있다. 때문에 스마트폰 제조사들은 사진의 본질을 고민하고 가치를 높이는 기술을 연구한 결과를 확인시켜주는 과정을 통해 조금씩 믿음을 얻어나가고 있다. 하지만 LG는 이러한 보편적인 과정을 따르지 않는다. 어떠한 노력을 기울였고, 기술력을 확보했으며, 어떻게 V40에 적용했는지 답했어야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
사진을 잘 찍은 스마트폰이란 믿음만 있으면 카메라를 하나만 달아도 기꺼이 지불할 이유가 된다. 저조도에서, 역광에서, 야경에서, 손떨림, 망원, 마크로에서 모두 최고의 디테일과 색감을 가진 사진을 자신하는가? 하물며 그런 스마트폰에 카메라가 셋이나 달려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나의 카메라 만으로도 멋진 사진을 찍을 수 있다는 믿음부터 심은 이후였으면 늘어난 카메라를 두팔 벌려 환영했을 지 모르지만, 지금은 그저 카메라의 숫자를 선점하려는 LG의 차별화 전략의 수행에만 충실하려 애쓴 것은 아닌가 모르겠다.
안타깝게도 LG V40은 LG 스마트폰의 부진을 씻을 치유의 희망을 봤던 그 이전으로 돌아간 느낌이다. LG 스마트폰은 달라야 한다는 그 집착적 본능이 1년 만에 돌아온 것이다. 물론 차별화를 추구하는 것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다만 본질에 대한 자신감을 바탕으로 변화를 추구해야 하는 차별화가 아니라면 그저 겉으로 조금 다른 제품일 뿐이다. LG를 좀먹는 그놈의 ‘차별화’라는 집착이 돌아온 것은 결코 유쾌하진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