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레노버가 16일 여의도 글래드 호텔에서 제품 발표회를 열었다. 지난 CES 2016에서 공개했던 씽크패드 X1 제품군을 국내에 소개하기 위해서다. 이날 공개한 제품은 씽크패드 X1 카본과 씽크패도 X1 요가, 씽크패드 X1 태블릿, 씽크센터 등 모두 4가지. 씽크패드라는 이름에 걸맞은 안정성과 업무 생산성에 초점을 맞춘 제품들이다.
하지만 이날 행사는 단순히 제품 발표만을 목적으로 한 것으로 보이진 않았다. 대형 프로젝터에 특징을 나열한 슬라이드를 보여주는 여느 제품 발표회와 사뭇 다른 무대를 만든 때문이다. 무대 시설과 규모만 놓고 보면 요즘 대세 아이돌 그룹이라도 올라와야 할 만큼 멋지게 꾸민 터라 이런 무대에서 PC 신제품만 소개한다는 것이 왠지 아깝지만, 그동안 대규모 행사를 피해왔던 PC 업체들의 사정에 비춰볼 때 이 같은 무대를 만든 한국 레노버의 의도를 파악하는 것도 필요해 보였다.
사실 이날 한국 레노버는 씽크패드 브랜드의 4개 제품에 대한 당위성을 설명하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한국 레노버는 4개 신제품에 대한 특징만 줄줄이 읊고 행사를 끝내지는 않았다. 널찍한 무대에 오른 한국 레노버 강용남 대표는 70년 전의 애니악부터 시작되는 컴퓨터의 역사에 PC의 진화 방향을 설명하면서 20년이 넘는 씽크패드 브랜드 역사도 훑었다. 슬라이드의 맨 왼쪽, 1946년의 애니악으로부터 거슬러 온 PC의 진화도 놀랍지만, 1992년에서 시작된 IBM 씽크패드 700c로부터 20년 넘는 시간의 파도에 유일하게 휩쓸려 가지 않은 PC 브랜드로써 씽크패드의 놀라운 생명력에 대해 짧고 굵게 설명한 것이다.
물론 PC의 진화와 미래, 씽크패드의 오래된 생명력을 단순히 4개 신제품을 맛깔스럽게 소개하기 위한 양념 정도로 고른 것은 아니다. 여기에는 숨겨진 의도가 있다. 이미 20년을 버틴 씽크패드가 앞으로 더 오랫동안 생존하기 위해선 먼저 PC의 중요성이 꾸준히 강조되어야 하고 이를 이용자들이 받아들여야 한다. 특히 PC 시장의 규모가 점점 축소되는 시장 조사 기관의 데이터가 분기마다 등장하고, PC 업체들의 투자 규모 역시 예전보다 못한 상황에서 이용자들이 PC의 중요성을 낮춰 보는 것은 레노버와 같은 PC 업체에게 매우 위험한 일이다.
결과적으로 레노버 같은 PC 업체가 할 일은 PC의 중요성을 상기시키는 것이지만, 단순하게 옛날 방식으로 더 좋은 성능이나 디자인을 이야기하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씽크패드 X1의 4개 신제품이 가진 특징을 설명할 때는 옛날 방식이 더 쉽고 편한 것은 맞지만, 그보다 앞서 PC의 중요성을 강조할 수 있는 메시지를 던져야 했다. 때문에 행사를 시작하자마자 PC는 인간이 가진 한계를 더 끌어올려줄 수 능력을 가진 장치라고 운을 띄우고 컴퓨터 역사에 남아 있는 씽크패드가 그 가치를 끌어내 온 브랜드라는 점을 강조하려고 했던 것이다.
실제로 이후 씽크패드 X1의 4개 제품군의 특징을 소개하는 부분에서 건조한 내용들로 채워졌다. 각 제품이 갖는 특징들, 이를 테면 노트북의 재질이 어떻고, 태블릿의 모듈을 넣은 이유를 설명하는 방식은 이전에 보던 제품 발표회와 별반 달라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한국 레노버가 컴퓨터의 변천사, 씽크패드의 과거를 먼저 소개함으로써 이 제품들이 PC의 역사를 잇는 제품이라는 메시지를 부담스럽지 않게 담아낸 것에 더 큰 의미가 있다. 물론 모든 이에게 똑같은 메시지가 전달되었다고 볼 수는 없지만, 적어도 PC의 중요성을 알릴 만한 브랜드를 가진 PC 업체가 해야 할 일을 오늘에야 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