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해 10월 웨스턴디지털은 플래시 저장 매체 전문 업체인 ‘샌디스크’를 인수한다고 발표했다. 이 인수 작업은 올해 5월에 마무리 됐고 완전한 웨스턴 디지털의 소유가 됐다. 하드디스크를 전문적으로 생산해오던 웨스턴 디지털은 낸드 플래시 부문에서 다량의 특허와 생산 능력을 갖춘 샌디스크를 흡수함으로써 플래시 메모리 저장 매체 부문을 약점을 확실하게 보완할 수 있게 됐다.
이처럼 웨스턴 디지털이 샌디스크를 안으로 합치는 모든 작업을 끝낸 뒤 첫 SSD 제품의 한국 발표회가 11월 15일에 있었다. 지난 해라면 샌디스크의 새로운 SSD 제품을 만나는 시간이었을 테지만, 어쨌거나 올해는 분위기가 확연히 다르다. 더 이상 샌디스크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날 발표한 제품은 웨스턴 디지털 블루와 그린 SSD였다.
웨스턴 디지털 블루와 그린 SSD는 샌디스크 시절에 만들었던 X와 Z 시리즈를 떠올리게 한다. 물론 그 시절에 봤던 동일한 제품이라는이야기는 아니다. 또한 블루, 그린 같은 SSD의 색깔 분류는 블루, 그린, 레드, 블랙이라는 웨스턴 디지털 하드디스크 제품군 이미지와 제대로 겹친다. 확실히 웨스턴 디지털의 색깔을 그대로 담는 듯한 인상이다.
일단 블루 SSD는 샌디스크 시절의 X 시리즈를 연상케 한다. 고급형을 지향했던 X시리즈와 마찬가지로 블루 SSD도 게이밍과 하이엔드 시장을 겨냥하는 SSD다. PC용 2.5인치 SSD와 노트북용 M.2 두 가지 형태로 출시되는 블루 SSD는 초당 읽기 545MB, 쓰기 535MB의 성능을 갖고 있다. 샌디스크에서 웨스턴 디지털로 자리를 옮긴 이후로도 제품 마케팅 매니저를 맡은 수하스 나야크는 SATA의 전송 대역폭을 최대치까지 끌어올렸고 게이밍이나 동영상 같은 작업에 적합하다고 말한다.
사실 새 제품을 내놓을 때마다 한계치를 극복했다는 것은 샌디스크 제품 발표회때도 자주 했던 이야기다. 하지만 웨스턴 디지털 블루 SSD가 샌디스크의 X400에 넣었던 엔캐시나 데이터 가드 같은 주요 기술을 그대로 이전한 제품이기는 하나 다른 점도 몇 가지 있다. 일단 실험 수명이 늘었다. 1TB 용량의 X400은 하루 20GB를 쓰는 작업을 할 때의 수명을 45년으로 잡았던 반면, 블루 SSD는 56년으로 10년 이상 늘렸다. 이는 샌디스크 때보다 나은 컨트롤러와 펌웨어 최적화의 영향이라고 말한다.
더불어 이 제품은 피트 랩(F.I.T LAB)의 기능 무결성 실험을 받는다. 이는 샌디스크 시절에는 하지 않은 부분이다. 피트 랩은 프로세서와 메인보드, 램 등 수많은 이용자의 컴퓨팅 조건을 설정하고 읽고 쓰기 테스트를 하면서 신뢰성을 검증한다. 웨스턴 디지털은 이 인증을 받은 제품은 어느 환경에서나 안정적으로 작동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참고로 블루 SSD의 평균 무고장 시간(MTTF)은 175만 시간이다.
성능 중심의 블루 SSD와 달리 그린 SSD는 전력 효율성을 더 중시한다. 마치 성능보다 전력 효율성에 더 초점을 맞췄던 그린 하드디스크와 거의 같은 개념이다. 이 점은 종전 샌디스크의 Z시리즈와 확실하게 다른 점이다. 오직 전력 효율성에 초점을 맞춘 때문에 성능이나 수명은 블루 SSD보다 확실히 떨어진다. 그린 SSD의 대기 전력은 30mW로 다른 SSD의 평균 대기 전력인 70mW보다는 확실히 적다.
물론 블루 SSD보다 성능이 떨어지기는 해도 그린 SSD의 읽기 성능은 초당 540MB, 쓰기 성능은 435MB다. 그린 SSD 250GB를 하루 20GB씩 쓰기를 했을 때 최대 수명은 11.2년 정도로 같은 같은 용량의 블루 SSD보다 3년 이상 짧다. 낮은 성능과 짧은 수명에 대한 여러 질문에 대해 웨스턴 디지털은 그린 SSD가 입문용 PC를 쓰는 이용자를 겨냥한 제품이라는 점을 재차 강조하며 차별화에 의미를 두는 듯했다.
웨스턴 디지털의 블루 SSD와 그린 SSD가 종전 샌디스크의 X와 Z SSD를 잇는 제품이기는 해도 합병의 영향에서 오는 장점들을 무시할 수는 없어 보인다. 일단 이전에 비해 제품의 색깔이 좀더 명확해졌다. 색상으로 구분하는 제품 이름 때문이 아니라 고성능과 전력 효율이라는 확실한 구분점을 뒀다는 점이 다르다. 또한 피트랩 인증처럼 이전 샌디스크 시절에 없던 안정성 확보 노력도 더해졌고, 좀더 탄탄한 웨스턴 디지털의 유통망을 활용하는 점도 달라진 부분이다.
물론 웨스턴 디지털과 샌디스크라는 두 개의 SSD 브랜드가 그대로 살아 있어 혼란스러운 부분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번 웨스턴 디지털의 인수 이후 조립이나 업그레이드용은 웨스턴 디지털 브랜드로, 노트북이나 PC 제조사에 공급하는 B2B용 SSD는 샌디스크가 공급하는 것으로 입장을 정리했다. 한마디로 PC조립이나 업그레이드 시장에서 일반 소비자들은 더 이상 샌디스크 SSD를 볼 수 없다는 이야기다. 때문에 샌디스크 SSD 이야기는 더 이상 없을 것이다. 이미 웨스턴 디지털은 다음 제품으로 초고성능 SSD인 웨스턴 디지털 블랙 SSD를 준비하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