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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블 타임, 탄탄한 기본기로 손목을 붙잡다

나는 첫 페블에 좋은 점수를 주진 않았다. 장난감 같은 만듦새, 떨어지는 해상도의 화면, 앱 설치와 실행의 한계, 준비되지 않은 언어 등 점수를 퍼줄 만한 게 별로 없었으니까. 그렇다고 초기 스마트워치 시장에 도전하는 스타트업의 패기에 대한 동정표만 준 것은 아니다. 아예 점수를 매기지 못할 정도로 형편 없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첫 페블의 칭찬 목록에 넣어둔 것들은 작고 가벼운 데다 항상 시계 화면을 띄운 상태로 오래 가는 배터리 정도다. 물론 작고 가볍고 배터리까지 오래가는 시계 라면 차라리 일반 전자 시계를 고르는 게 편할 수 있지만, 네트워크에 연결되는 스마트워치 세계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다. 상호 연동된 스마트 장치의 알림을 성실하게 이용자의 손목 위로 배달하는 스마트워치의 핵심 기능을 감안하면 오래 가는 배터리는 점수를 좀더 줄만한 이유다.

↑페블 타임은 평범한 손목시계처럼 보일 만큼 작고 가볍다

↑페블 타임은 평범한 손목시계처럼 보일 만큼 작고 가볍다

문제는 배터리 능력 만으로 페블의 강점을 이야기할 수 없는 시대가 왔다는 점이다. 스마트워치의 강력한 경쟁자가 늘어난 때문이다. 애플, 삼성, 구글 등 이름 값에서 앞서는 기업들이 줄줄이 스마트워치 시장으로 입성했다. 이러한 강자들 앞에서 페블이 스타트업의 동정표를 더 이상 구걸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 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페블 스틸처럼 작은 변형만으로는 진짜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하지만 페블은 의외의 선택을 했다. 그들은 멋진 만듦새와 기찬 재주로 똘똘 뭉친 경쟁사의 스마트워치에 무리하게 덤비지 않았다. 대신 앞서 페블 스마트워치에서 점수를 얻었던 특징은 그대로 두는 대신 기본기를 더 다듬었다. 더불어 처음 등장 때와 마찬가지로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신제품 출시 소식을 알리는 동시에 판매를 시작했다. 페블 타임은 그렇게 등장했다.

↑페블 타임은 e잉크 화면을 써 강한 햇살 아래서도 잘 보인다.

↑페블 타임은 e잉크 화면을 써 강한 햇살 아래서도 잘 보인다.

먼 바다를 건너온 킥스타터 버전의 페블 타임은 적어도 1세대 페블 스마트워치에서 좋지 않던 인상 하나를 확실하게 지운 것이 반가웠다. ‘장난감’ 같은 느낌을 완전히 버린 것이다. 그득했던 장난기를 걷어내고 조금은 더 진지해진 만듦새를 보니 너무나 반갑다. 물론 더 진지했던 페블 스틸이 있었지만, 페블 스틸의 뒤를 페블 타임보다 페블 타임 스틸이 잇는 것으로 치면 페블의 이미지는 크게 달라진 셈이다.

사실 페블 타임에서 화려하거나 세련된 맛을 느끼기는 어렵다. 단지 페블 타임을 볼 때 이것이 ‘스마트워치’라는 인상을 주지 않는다. 그저 우리가 일상에서 보는 전자 시계와 다름 없을 만큼 작고 얇고 가볍다. 심박 센서처럼 많은 공간을 차지하는 부품을 빼니 그만큼 몸매 관리가 쉬워진 데다 손목에 찰 때 시계의 무게 때문에 부담된다는 불평을 할 이유가 전혀 없다.

↑페블 타임의 배터리는 나흘 정도 버틴다. 충전은 전용 케이블을 써야 한다.

↑페블 타임의 배터리는 나흘 정도 버틴다. 충전은 전용 케이블을 써야 한다.

심박 센서를 활용하는 재주가 없어도 전혀 아쉽진 않다. 여전히 알림 하나 만큼은 기똥차게 전달해서다. 어차피 스마트워치의 존재를 가장 절실할 때는 알림을 받을 때인데, 페블 타임은 거의 놓치는 게 없다. 단지 전화가 왔다는 알림을 받을 때 페블 타임으로 통화는 할 수 없고 그저 거절할 수 있을 뿐이지만, 시스템의 모든 알림을 전달하는 기본기 만큼은 아주 잘 닦아 놨다.

또다른 강점은 시계다. 항상 시계가 켜져 있다. 배터리를 오래 쓰기 위해 화면을 꺼두는 꼼수 따윈 부리지 않는다. 더구나 컬러 e잉크 화면이라 강한 햇살이 내리쬐는 한낮에도 시계를 또렷하게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배터리는 알림을 받고 이런저런 기능을 실행해도 넉넉히 나흘 정도 버틴다. 20%가 남으면 밥달라고 징징대지도 않고 커피 한잔 마시는 시간 동안 충전해 달라며 센스 넘치게 커피 아이콘을 띄운다. 커피 한잔 마시는 여유라면 충전은 끝난다. 하지만 배터리가 다 떨어져도 슬퍼하기는 이르다. 배터리가 없으면 화면 끄고 파업부터 하고보는 다른 스마트워치와 다르게 페블 타임은 아주 적은 배터리 만으로 디지털 시계만이라도 계속 표시한다.

↑페블 타임도 만만치 않은 전용앱이 있지만, 우리나라에서 위치 활용은 쉽지 않다.

↑페블 타임도 만만치 않은 전용앱이 있지만, 우리나라에서 위치 활용은 쉽지 않다.

페블 타임도 앱이 있다. 게임 앱도 있고, 운동용 앱도 있고, 유틸리티도 있다. 시계 화면도 바꿀 수 있다. 페블도 오랫동안 앱 생태계를 관리해온 터라 전용 앱이 적은 편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넉넉하다고 말할 단계도 아니다. 만보계처럼 쓰는 미스핏 앱, 나침반이나 초시계 같은 간단한 유틸리티 정도는 쓸만하다. 다만 우리나라에서 위치를 이용한 앱의 활용성은 그리 뛰어나진 않다.

그런데 페블 타임의 앱을 다루거나 설정할 때 여느 스마트워치처럼 터치로 조작하지 않는다는 게 흥미롭다. 아직도 버튼 방식을 고집한다. 그래서 불편하냐고? 아니다. 오히려 페블 타임의 버튼 방식이 더 편하다. 메뉴 구조가 버튼에 최적화되어 위아래로 움직이는 간소한 구조라 이해하기 쉽다. 또한 터치 스크린이 아니므로 의도하지 않은 터치로 있을 수 있는 장치의 오작동마저 방지한다.

↑페블 타임은 버튼으로 조작해도 그다지 불편하지 않다.

↑페블 타임은 버튼으로 조작해도 그다지 불편하지 않다.

물론 페블 타임이라고 모든 게 완벽한 것은 아니다. 현지화가 되어 있지 않으니 따라다니는 불편도 있다. 카드나 은행처럼 1로 시작하는 대표 전화 번호는 맨앞의 1을 생략한 채 보여줄 때도 있고, 서울 국번의 전화번호는 02와 그 다음 숫자를 포함한 세자리를 () 안에 넣어서 표시해 헷갈린다. 페블 타임이 우리나라 전화번호 체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생기는 문제인데 고치긴 어려울 듯하다. 우리나라를 몇 번이나 다녀간 페블 대표에게서 현지화의 의지를 전혀 읽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페블 한국어팩을 만든 고마운 ‘용자들‘ 덕분에 그나마 쓸만한 물건이 되었을 뿐이다.

충전 케이블도 아무거나 쓰지 못한다. 전용 케이블만 써야 한다. 나흘 이상 출장지에는 케이블을 챙겨가야 한다. 만듦새는 좋지만 화면 둘레의 재질이 충격이나 긁힘에 약한 것도 안타깝다. 딱딱한 물체에 부딪친 페블 타임을 자세히 보니 그 자리에 충격 흔적이 남아 있었다. 이곳에서 테두리 교체는 엄두도 내기 힘든 만큼 더 잘 관리해야만 한다.

↑충전이 필요할 때 띄우는 커피 아이콘

↑충전이 필요할 때 띄우는 커피 아이콘

비록 몇몇 불편과 부족한 재주를 지적할 수 있다. 하지만 많은 것을 담으려는 스마트워치와 반대로 기본에 집중한 페블 타임을 가벼이 여길 수 없다. 알림의 기본기에 충실하고, 손목에 편하게 찰 수 있으며, 언제나 시계를 띄우면서도 오래 쓰는, 그리고 앱 생태계까지 갖췄으니까. 그 이유 만으로 나는 페블 타임을 손목에서 풀지 않는다. 더 비싸고 좋은 스마트워치가 없는 것은 아니다. 단지 페블 타임 만큼 기본의 중요성을 보여준 스마트워치가 드물 뿐이다.

원문 출처 | 블로그 chitsol.com

PHiL
글쓴이 | 칫솔(PHILSIK CHO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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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tsol@techg.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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